(영화스포주의)

 

영화 '국가부도의날' 포스터

 

영화 국가부도의 날을 봤어. IMF 구제금융 요청이 있었던 1997년의 상황을 영화로 만들어 본 거야. 허구지만 IMF 국제금융구제신청(1997123) 직전의 우리나라 상황과 여러 사람들의 선택을 짐작해보게 되었지. 너에게 꼭 소개하고 싶어 이렇게 몇 자 적어봐. 여러 인물이 나오기 때문에 인물을 중심으로 이야기 해볼게.

 

 

첫 번째 인물은 IMF를 적극 추진하는 정치인이야. IMF 구제신청이 국가부도를 막는 빠르고 쉬운 방법이라면서 국가부도의 위기를 국민들에게 알리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해. 그리고는 대기업에 몰래 찾아가 미리 대비 해두라 일러두는 장면이 나와. 우리나라에 불리한 조건을 들이미는 IMF의 요구에 대항하지 않고 수긍해버리지.

 

실제 당시에 정부의 외환보유고를 유지, 관리하는 행정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고들 보지. 영화에서도 얼핏 나오지만 당시 김영삼 정부가 한보, 기아자동차와 같은 기업에 불법 은행대출을 용인해주고 김영삼 대통령 아들 김현철이 막대한 뇌물을 받았데. 시대마다 경제 문제에 있어서 국가가 해주어야 할 역할들이 있는데 이때는 오히려 대통령이 자신의 이익을 챙겨 문제를 일으키는 상황이었지. 불법으로, 권력을 이용해서 말이야. 김영삼 대통령은 19971110일 강경식 경제부총리와 통화하기 전에는 외환위기 심각성을 모르고 있었다고 위키백과에 기재되어 있어. IMF 구제 신청 이후 바로 다음 대통령 선거가 진행되고 김대중 대통령으로 정권이 바뀌면서 뒤처리를 넘기고 자신은 책임에서 벗어나 버렸지.

 

영화의 마지막 즈음에는 지금 현재의 인물들이 드러나. 여전히 대기업들에게 정보를 건네주는 정치인들이 묘사되는데, 허구지만 나는 언젠가부터 당연히 이런 일들이 있을 것이라 짐작하는 것 같아. 확신에 가까운 짐작 말이야. 나는 이런 불신이 스스로 굉장히 지치게 한다고 느껴. 그래서 오히려 관심을 두고 싶지 않고. 이런 무관심과 회의가 계속된다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겠지. 더 나아가 (실제 그랬던 것처럼) 우리 상황은 더 심각해져 버릴지 몰라. 내가 아무 잘못을 하지 않고 산다고 생각하지만 무관심은 누군가들의 행동을 용인하게 되니까.

 

정부, 정치인들이 끝까지 국민들에게 나라의 상황을 알리지 않은 이유가 뭘까? 영화에서는 정치인들이 미리 알려 줘봐야 혼란만 가중될 것이라고 말하고, 반대측(주인공)은 알려서 대책을 마련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해. 내 추측은 시민, 시민단체 등의 반대를 회피하기 위해 IMF 협상을 비공개로 해버리고, IMF 신청을 하고 나서야 비로소 공개 하는 거야. 자기들이 알아서 결정하고 처리하겠다는 권위의식이지. 시민들과 소통하지 않고 결정해 버리는 정치인은 시민을 아무 생각 없는 사람, 통제되어야 하는 사람, 자기 뜻대로 따라오기만 하면 되는 존재로 생각한다고 봐. 시민들이 자신보다 아래에 있다는 것을 전제하는 느낌이랄까. 이론상으로는 오히려 반대가 되어야 하는데 말이야.

 

두 번째 인물은 한국은행 직원들이야. 영화에서는 유일하게 국가부도를 확신하고 IMF 구제금융요청 체결을 반대하는 사람들이지. 국가부도 사태를 국민들에게 알려야 한다고 주장하고, IMF 구제금융요청 외에 다른 방안(모라토리엄 선언: 채무지급유예)이 있다고 주장하지만 결국 미국 등에 유리한 IMF 관리체제가 시작돼. 영화에서 이들은 IMF 구제금융요청은 최악의 선택지라고 보고 다른 대안 책들을 제안하지만 다수의 정치인들은 동의하지 않아. 언론인들도 관심 가지지 않지.

 

실제로는 1997년 한국은행에서 여러 차례 정부에 IMF 구제금융 요청을 촉구했어. 일부 학계에서 다른 대안 책을 제시했지만 진지하게 논의해보지 않았어. 영화에서의 주인공과 같은 인물은 없었던 거지. 있었다 하더라도 한국은행의 주된 의사가 아니었고. 비슷한 시기, 우리나라와 비슷한 상황이었던 말레이시아는 외환위기가 해외 투기 자본의 조작이라 판단하고 IMF에 구제 금융을 신청하기 보다는 내부 시장 보호에 주력했다고 해. 정부 지출을 늘려서 자기 나라의 기업, 시장을 살리려 한거지. 우리나라와 비슷하게 가장 빨리 외환 위기에서 벗어난 국가 중 하나라고 하더라. 시기는 비슷하지만 말레이시아는 부동산 가격이 오르지 않고 물가가 크게 바뀌지 않았데. 결과의 형태가 많이 다른 거지. 국가가 어떤 결정을 하느냐가 얼마나 큰 변화를 가져오는가 볼 수 있는 것 같아.

 

우리나라에서도 의견이 나왔던 모라토리엄 선언은 러시아가 했었데. 외채상환을 일방적으로 3개월 동안 중단한 거지. 그래도 국제사회는 러시아에 어떤 재재도 가하지 않았고, 서서히 극복해 나갔지. 오히려 이자를 낮춰 이득을 보기도 했데. 러시아도 말레이시아와 마찬가지로 외환위기 상황이 국제 투기 자본 때문이라고 본거야. 우리나라에서 모라토리엄 선언이나 다른 대책이 제대로 논의되지 않은 것에 대해 미국을 중심으로 한 지식인들, 정치인들이 많았다는 추측도 있어. 우리 정부는 외환위기의 이유를 국내의 문제로만 보았던 이유도 있지. IMF 내에서 미국의 영향력이 컸고 미국이 자신의 시장을 넓히기 위해 IMF를 이용한다는 추측들도 많았어. 영화에서도 미국 정치인이 IMF 팀과 몰래 만나는 장면들이 나와. IMF 관리체제를 통해 자본시장의 대폭 개방으로 미국을 포함하여 여러 국가들이 결국 경제적 이익을 취할 수 있었기 때문에 그런 측면이 분명 있었을 것 같아. 우리나라 정치인, 지식인들이 왜 굳이 미국의 이익을 대변할까에 대해서는 답답하기만 하지만.

 

우리나라에 다른 대안책을 제시하는 이들이 있었고, 이들의 의견에 정치인들이 주목하지 않았다면. 정치인이 아닌 시민들은 왜 주목하지 않았을까? 그 당시 우리들은 정부에 대해, 지식인들에 대해 어떤 인식을 가지고 있었을까? 우리들이 아는 바가 제한되어 있다면 정부가 계속해서 국가위기가 아니라고 발표할 때 그 말을 믿지 않을까. 또 여러 기업들이 연달아 부도가 나고 환율이 떨어지는 상황에서 IMF 구제금융신청을 했다고 발표된다면 우리나라가 이제 큰일 났구나.’라는 생각을 하지 그 것이 최선의 대안일까 의심하지 않겠지. 누군지 잘 모르는 몇몇 사람(예를 들어, 모라토리움 선언이 대안이라 말하는)의 말을 들어도 그게 뭔지 잘 모르겠고, 더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보기도 어렵고 말이야. 무엇보다 그게 더 나은 대안이라는 판단이 든다고 해도 내 의사를 어디에 표현해서 제시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을지 몰라. 가능하다고도 생각지 않고.

 

사회를 바라본다는 것은 뭘까. 문제가 발생하면 그렇구나’, 대안을 제시하면 그렇구나’, 비리를 저질렀다 하면 나쁜 놈’, 사람이 죽었다하면 대책도 마련하지 않는다탓하고. 그건 뭔가 그 사실을 알리는 사람들, 그 일을 저지른 사람들의 의도대로만 되는 느낌이야. 우리가 먼저 문제를 예측하고, 대안을 제시할 수 있고, 더 나은 대안을 알아볼 수 있고, 비리를 들춰내어 뿌리를 뽑을 수 있고, 누군가 다치거나 죽기 전에 뭔가 할 수 있다면. 그렇게 되기 위해 뭔가를 살펴보고 의심하고 공부해나가는 것이 사회를 진짜 바라보는 것이 아닐까.

 

세 번째 시민은 이런 기회를 틈타 돈을 벌려는 인물이야. 자산관리자였던 한 인물이 투자자들을 설득해 외환위기 시 헐값으로 떨어진 집을 사들여 돈을 벌게 되는 거지. 그 인물은 이런 말을 해. 국가, 정치인의 무지, 무능에 투자하려 한다.’ 나라의 위기상황을 알아챘지만 국가를 신뢰하지 않는 시민의 모습이지. 그는 국가의 위기를 이용해 자신의 이익을 취하려는 인물이야. 사회 현상을 파악한 사람이 자신의 이익만을 챙길 때 사회에는 또 하나의 희망이 사라지는 것이겠지. 또 하나의 불행이 생겨나는 것이고. 현재도 미국이 투자하는 기업들을 위주로 투자하며 계속해서 부를 쌓는 것으로 묘사돼.

 

사회의 움직임을 정확히 파악했다 하더라도 파악한 사람이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느냐에 따라 미래의 사회는 좀 더 긍정적으로 바뀌기도 하지만 좀 더 부정적으로 바뀌기도 해. IMF 구제신청 전후를 볼 때 자신의 이익만을 우선으로 선택한 사람들은 대통령, 정치인, 굼융업계 종사자, 투자자, 대기업 운영진 등에서 존재했던 거지. 사회 전체로 보면 자신의 선택이 나라를 망하게 하고, 다른 시민들의 삶을 피폐하게 한다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모르겠지만. 그 것을 자신들의 책임에 두지 않기 때문에 이기적인 선택들을 해나가는 것이라 봐.

 

시민성에는 사회에 대한 책임의식이 포함되어 있어.

우리에게는 그런 것에 대해 생각해볼 시간이 필요해.

 

마지막 네 번째 인물은 중소기업 사장이야. IMF 구제금융신청으로 가장 큰 타격을 받았던 곳 중 하나가 중소기업들이지. 물론 대기업들도 여럿 부도가 났어. 이때의 자살률은 어마 무시하다고 해. 산업화 시대 이후로 계속해서 사업을 해나가던 시민들이 1997년 당시 어떤 상황에 처해졌는지, 왜 그들이 자살을 생각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해 짐작해볼 수 있었어. 상처를 받은 서민의 대표 캐릭터였어.

 

먼저 중소기업의 거래처들이 하나둘씩 부도를 겪게 돼. 자신이 가지고 있던 어음이 아무 소용이 없어지지. 현금으로 돌려받을 수 있는 곳이 없는 거야. 물건을 팔아야 할 곳들도 망하고, 직원들 월급 줄 돈도 없는 상황인데 금융권도 망하니까 대출도 안 되는 거야. 가족에게 보증을 서 달라 하고 제2금융권인 사채 대출을 받기도 하지만 그것으로도 부족할 정도로 속수무책이지. 영화에서는 대기업과 중소기업들이 줄줄이 부도가 나는 것을 체크해나가는 장면이 보여. 그때의 나는 11살이었는데 내가 모르는 이름의 대기업들도 엄청 많더라구. 자살을 시도하려다 참고 마지막에 동생(한국은행직원)을 찾아가 교도소에 가도 되니 돈을 대출할 수 있게 도와 달라고 말하는 장면은 너무 쓸쓸하고 답답해.

 

돈이 없다는 것이 죽음을 선택할 정도의 문제인가 생각했던 적이 있어. 나와 가족이 사업을 해본 적이 없었고 주변에도 없어서 체감하기가 어려웠지. 영화에서의 인물을 보고 내가 돈이 없고, 빚이 많다는 사실이 어떻게 다가올지 생각해보게 됐어. 많은 직원들에게 줄 월급은 없고, 집이나 공장을 팔아도 가격이 너무 내려 푼돈이고, 거래처들도 부도가 났으니 사업은 진행이 되지 않고, 가족들은 나만 바라보고 있고. 이런 상황이 갑작스레 예고도 없이 불어 닥치면. 글쎄 막막함을 넘어 공포가 아닐까 싶어. 여러 위치에서의 책임감이 오히려 사람을 죽음으로 몰고 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런 일이 또 일어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어 씁쓸해.

 

그럼 IMF 구제금융 신청 후에는 좀 나아졌을까? 나아진 것도 있겠지만 삶이 많이 힘들어진 시민들이 많았을 거야. IMF가 한국에 요구한 내용은 이런 거야. 우리나라에서 활동하고 있던 기업이나 증권사 등의 금융기관에 대안을 마련할 기회를 주기 않고 부도처리를 하거나, 대기업의 구조조정을 통해 대량 해고를 진행하거나, 정규직들을 비정규직화한다거나, 외국 기업이 한국기업을 운영할 수 있도록 하는(외국인 주식투자 한도 확대(26%50%55%)) 의 것이지. 구제금융신청 바로 뒤에 있을 대선 후보들에게 각서를 받았었다 하니 수치스럽더라. 이때부터 늘어난 비정규직은 2008년 과반수를 넘겼다고 하니 2019년에 비정규직 이야기가 왜 나오고, 공무원 붐이 왜 일어났는지 이해가 되네.

 

영화에서는 금융업계 종사자들, 대기업 운영진 등도 나오는데 외환위기의 원인으로 지급준비제도 역할 축소, 국가의 외환 보유고 관리 실패, 정경유착으로 대기업의 부정대출 용인, 원화가치를 지키기 위한 인위적인 환율 방어(비용 들여서), 외채를 끌어온 금융기관들, 규모가 큰 국제금융세력들이 투자금을 회수해 가며 외환보유량을 고갈시키는 등이 알려져 있어. 내가 설명하기엔 아직 너무 어려워서 너도 한 번 즈음 자료를 찾아보라는 제안을 하고 싶어. 1997년에 시작된 IMF 관리체제가 2001년 끝났지만 우리나라는 또 다른 문제로 언제든 선택의 기로에 놓일 수 있으니까. 그때가 오기 전에 뭔가를 해볼 수 있는 것도 우리들이지 않을까? 정부에게만 의존하지도 지식인들에게만 의존하지도 말고, 올바른 정치인, 현명한 지식인들을 알아보고 뽑거나 지지할 수 있는 것도 우리들 시민이고, 경제 문제에 대책을 세우고 해결해 나갈 수 있는 것도 결국 우리들이니까.

 

1997년 외환위기 39억 달러에서 IMF로부터 195억 달러를 받고, 1998520억 달러, 20011028억 달러를 보유하게 되면서 2001823일에 195억 달러를 갚게 된 우리나라의 끈질김에 대해 상상해봐. 해외 빚을 갚는데 쓰이긴 했지만 금모으기 운동으로 세계적 이슈를 이끌어 냈던 시민성을 상상해봐. 우리들이 사회에 더욱 관심을 가지고 미리 움직인다면 우리나라 시민들의 저력은 더 효과적으로 발휘될 거라 믿어. 그 믿음만큼 바뀌는 것이고.

 

오늘도 희망이 만들어지고 있기를 바라며 그말 줄일게.

 

고전소설을 읽는 독서모임을 하고 있어. 

 

거기에 미소가 귀여운 여자분이 한명 있지.

 

모임이 끝날 무렵 그 친구는 이번주에 길을 가다 안개꽃 한 묶음을 샀데.

 

그리고 남자친구에게 선물을 했다고.

 

특별한 날이 아닌 어느 날에. 

 

Photo by  boram Jeong  on  Unsplash

 

나는 처음에 잘 못알아듣고 그 친구가 꽃을 받은 줄 알았어.

 

좋겠다는 말을 건넸는데 그 말을 들을 당사자는 그 친구의 남자친구였지.

 

남자친구는 하루 종일 꽃을 받아 좋다고 말했데.

 

산책 길에, 퇴근 길에 무심코 꽃을 사서 서로에게 건넬 수 있는 문화.

 

다른 언니는 유럽에서 꽃을 든 노인들을 보았다며 꽃을 사는 게 일상인 그런 문화가 부럽다 했어.

 

나는 사실 올해 엄마 생일 날 아빠와 함께 꽃다발을 사서 아빠가 전해드리게 했어.

 

작년에도 시도하려 했지만 저의 실수로 꽃을 준비하지 못했어. 

 

이번 생일에는 꼭 꽃을 사자는 저의 제안에 며칠 뒤 무뚝뚝한 아빠는 나에게 말했어.

 

장미꽃 30송이(송이수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네요)의 꽃말이 맘에 든다며 

 

빨간색 장미꽃 30송이를 사야겠다고. 집 근처 꽃집에 알아봐달라고.

 

결국 꽃집 추천대로 여러 꽃을 섞어 요즘 유행한다는 꽃다발을 샀지만.

 

아빠는 꽃값에 비해 꽃이 너무 적다며 투덜댔지만 꽃다발을 의식하며 엄마가 있는 곳으로 함께 갔어.

 

물론 엄마는 돈이 아깝다며 다른거 사주지라고 핀잔을 주셨지만

 

꽃다발과 아빠의 편지는 엄마의 SNS에 바로 기록되었어.

 

낭만이 없던 우리들에게 그 것은 낯설지만 그래서 더욱 화사해.

 

낭만이 필요한 우리들의 소소한 행복들은 미래에 더 자주 있을까?

 

Photo by  Leonardo Wong  on  Unsplash

급하게 먹으면 몸에 좋지 않다.

 

체하기도 한다.

 

세상이 급하게 변하면 혼란을 겪고 오히려 체하기도 할 것 같다. 

 

어쩌면 우리 세상은 수없이 많은 분야에서 발전하지만

 

그 수없는 발전을 따라 잡을 여건이 안될지 모르겠다.

 

평범한 우리들에게는 특히나 버겁지 않을까.

 

못 갈 곳이 없고,

 

상상하던 많은 것들을 실제로 해볼 수 있지만.

 

우리의 삶은 고립되고 마음은 가난하다.

 

요즘 그런 생각을 해본다. 

 

우리의 삶은 과거로 회귀해야만 안전하지 않을까 하고.

 

Photo by  Anita Jankovic  on  Unsplash

 

네 것과 내 것이 분명한 이 곳에서 

 

너의 것과 나의 것의 경계가 모호한 공동의 것들을 추구해야 하지 않을까.

 

나와 너의 것을 나누고 공유해가야 하지 않을까.

 

체하지 않으려면 천천히 먹고, 

 

내가 잘 소화시키던 음식들을 먹어야 할 텐데.

 

소화 능력이 떨어질수록 적게 먹어야 하는데.

 

많은 것을 가질 수 있는 기회는 열렸지만,

 

우리는 많은 것을 포기하는 준비를 해야 하지 않을까.

 

그것을 무소유라 말할 수 있을는지.

 

그것을 공동체라 말할 수 있을는지.

길가다 현수막 하나를 봤어.

실패 박람회라고 적혀 있었지.

대구에서 실패를 소재로 한 활동들이 진행되는 행사였는데, 시민들이 학업, 취업, 인간관계, 연애 등 분야를 선택하여 실패에 대해 이야기하는 숙의 토론이 있었어. 실패를 소재로 한 전시, 버스킹 공연이 있어 시내를 돌아다니며 내용들을 볼 수 있었지. 실패에 대해 이야기 할 수 있는 부스, 무대도 있었고, 실패의 경험을 나눌 수 있는 청년 네트워크 활동도 진행됐어. 여러모로 궁금할 수밖에 없었어. 대구에서 이런 걸 하는구나 감회가 새롭기도 했구.

 

나는 실패한 청년들의 네트워크 파티에 참석했어. 가는 길에 상상해봤지. 무슨 이야기가 나올까? 내가 가서 이야기 나눌 거리는 있을까? 나도 크고 작은 실패를 경험하고 있지만 훨씬 더 역동적인 도전을 해가는 사람들에 비하기엔 꽤나 주관적인 실패가 아닐까 싶었어. 하지만 이 네트워크의 취지 자체가 자신의 삶과 타인의 삶을 응원하기 위함일테니 실패의 경중을 따질 필요는 없겠다 싶었지.

 

미묘한 긴장감과 함께 들어간 행사장 왼편에는 발표자들이 있었어. 첫 발표자는 여러 사업을 도전하고 실패하기를 반복해왔고, 지금도 도전 중이었어. 주도적인 삶을 살아간다는 느낌? 그리고 두 번째 발표자가 무대 위에 올랐어. 그는 선천적인 병이 있는데 성장과정에서 여러 사고들을 겪어 더 아픈 곳이 많아졌데. 건강이 좋지 않은 그 청년은 그럼에도 좋아하는 일들을 하며 잘 살아가고 있다고 했어.

 

다음 발표자 둘은 공교롭게도 우울증을 앓고 공황장애 진단을 받은 상황이었어. 공황장애나 우울증을 앓는 청년들이 많다는 건 알고 있었어. 요즘 유행하는 책을 봐도 개인의 감정이나 마음 치유를 위한 것들이 굉장히 많거든. 그래도 이런 자리에서 실감하게 될 줄은 몰랐네. 두 청년은 관계에서 오는 어려움들을 이야기했어. 고등학교 시절, 대학교 시절 뿐 아니라 가정에서도 자신을 이해해주는 사람이 없었던 상황들이 느껴졌어.

 

유별나다” “이상하다” “네가 참아야지” “네가 극복해야지

이런 말들을 많이 들어 왔다고 해.

눈에 보이지 않는 상처들이 쌓이고 쌓여 사람들은 병이 들겠지.

 

Photo by  Alec Douglas  on  Unsplash

처음 네트워크 파티에 갈 땐 실패는 무언가에 도전한 결과물이라고만 생각했었는데 아픔이라는 실패가 참 많더라. 몸이 아프거나 마음이 아프거나. 내가 원해서 무언가에 도전한 것도 아닌데 우리는 저절로 실패를 경험하게 되나 봐. 삶에서 계속해서 다가오는 여러 사건, 불행들은 내가 원치 않았던 도전의 상황들로 나를 끌어가는 듯해. 유별나지 않아야 하고, 평범하게 보여야 하고, 스스로 알아서 해야 하고, 책임지고 해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아. 그런 말들을 듣는 것이 필요할 때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만 가득하다면.. 글쎄. 존재를 부정당하는 기분을 느끼고, 소외되고, 고립될 것 같어.

 

공황장애가 있는 한 청년은 청중들에게 힘들면 도망가도 된다고 했어. 도망도 실패지만 그런 실패를 해도 된다고. 이들의 실패는 개인의 실패가 아닌 것 같아. 다양함을 인정하지 못하는 사회 속에서 우리들이 한동안 계속해서 겪게 될 실패지. 나는 그들이 우울증과 공황장애가 있음에도 이 무대에 나와 이야기를 하는 이유를 생각해야 했어. 자신을 이해해주지 못한 어떤 이들을 원망하고자 함이 아니었어. 자신에게 있으면 좋았을 관심의 부재를 탓하는 것도 아니구.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소중하다'

 

그런 말을 계속해서 하고 있는 듯했어. 사업에 실패를 하던, 태어날 때부터 아프던, 사람에게 상처 받아 마음의 병이 생기던, 유별나던, 연애에 실패를 하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소중하다. 실패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은 그 것을 알고 있는 거야.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함께 박수치는 나와 청중들도 알고 있는 것이고. 실패는 성공하기 위한 기본 과정들이라고 하지? 그 자리에 모인 많은 이들은 실패를 성공의 과정으로 인정해 나가고 있는 것 같아. 아픔이 실패라면 인정과 극복은 성공일까? 성공은 실패 뒤에 오는 것만도 아닌 것 같은데. 성공 안에 실패가 들어갈 뿐이지. 내가 본 그들은 이미 성공적인 삶을 살아내고 있었어. 자기가 삶의 주인공인 사람들.

 

Photo by  TK Hammonds  on  Unsplash

우리는 모두 삶의 주인이 되기 위해 준비하고 있는 사람들이야.

 

50년 뒤를 살고 있는 너에게 오늘의 이 희망을 전하고 싶었어.

그 때가 되면 지금 우리들이 어떤 고민을 했는지, 어떤 활동을 했는지, 이런 많은 것들이 잊혀져 갈테니까.

다음에 또 편지 할게.

 

서로 다른 두날,

두명의 할아버지를 만났어.

 

지하철 옆 칸에서 온 할아버지는 가방을 끌고 나와 칸의 중간에 섰지.

나는 음악을 듣고 있었는데,

할아버지 목소리가 워낙 우렁차서 자동으로 고개를 들게 됐지 뭐야.

그의 표정이 해맑아 난 갑자기 이어폰을 빼고 싶어 졌어.

백화점에서 파는 앞치마를 2천 원에 판다고,

이 기회를 놓치지 말라고 했지.

헤블랑했어.

헤블랑 하나는 말 알려나?

사전에 안나오는 나의 엄마 용어야. 

어설프다는 뜻으로 썼었는데 이 단어는 도대체 언제부터 내가 썼었는지 모르겠다.

어쨌든.

토끼 캐릭터가 그려진 그 앞치마는 절대로 물이 들어가지 않는데.

가끔,

차라리 아무 무늬가 없을 때가 가장 나은 때가 있잖아?

그 앞치마가 그랬어.

나는 그 헤블랑한 앞치마를 샀어.

필요한게 아니면 거의 사지 않는 나인데.

백화점에도 파는 좋은 거라고 해서 산 것도 당연 아니지.

 

할아버지의 표정에서..

그 표정에서 보이는 열정이랄까, 희망이랄까. 

그 무언가가 존경스러워서.

부러워서.

난 굉장히 역동적인 사람은 아니어서 말이지.

가끔 이런 사람들을 만나면 기분이 좋다.

 

할아버지가 백화점 물건을 떼와서 싸게 파는 것이 아닐 거라 생각해.

평소의 나라면 2천 원 주고도 사지 않을 물건이지.

하지만 나는 할아버지의 희망을 보았어.

할아버지는 스스로의 활동에 자긍심을 느끼는 표정이었어.

당당하고. 유쾌했어.

Photo by  Aaron Burden  on  Unsplash

비가오는 다른 날이야.

비가 온다는 기사를 봐서 우산을 챙겨 외출을 했지.

그 날은 누가 봐도 비가 오는구나 알 수 있는 그런 날이었어.

대구 시내에 내려 길을 걸어갔어.

빗방울이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고, 우산을 챙겨 온 보람이 있다며 스스로 만족하던 차였지.

거리 중간 벤치 쪽에 앉아 있는 할아버지를 봤어.

할아버지는 의자가 있는 그 곳에서,

의자 앞의 바닥에 앉아 있었어.

표정이 있어야 할 얼굴에 표정이 없는 느낌.

 

할아버지 앞엔 돈을 받는 바구니가 있었고,

할아버지는 그 바구니인지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하는 바닥인지를 하염없이 보고 있었어.

나는 그냥 지나갔어.

그렇게 무시하고 가려는데 빗줄기가 생각보다 너무 빨리 거세졌어.

젠장.

다시 할아버지가 있는 쪽으로 갔어.

할아버지는 여전히 누구도 쳐다보지 않고 있었어.

나는 할아버지에게 우산을 건네었어.

목적지 바로 근처라 우산 없이 갈수도 있었고,

집에 돌아갈 때는 그칠지도 모른다 싶었지.

그렇게 계속 앉아있을 것 같은 할아버지의 모습이 상상되는게 싫었던 것 같아.

 

할아버지는 나를 슬쩍 보고 다시 땅바닥인지를 보며 고개를 저었어.

“저 우산 하나 더 있어서요.”

할아버지는 계속 거절했어.

할아버지는 거기에 그 모습 그대로 있을 작정인 거지.

꽤나 냉정한 나는 어른에게도 아이에게도 세 번 이상 제안하지 않는단다.

결국 다시 우산을 쓰고 목적지로 향했어.

길을 가다 돌아본 할아버지는,

허공인지.

바닥인지.

돈 바구니인지 모를 곳을 바라보고 있었어.

 

Photo by  reza shayestehpour  on  Unsplash

길거리 노숙자나 돈을 구걸하는 사람들을 혐오에 가까운 감정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을 보곤해.

나의 지인도 있지.

나도 그 사람들을 보면 마음이 썩 유쾌하지 않아.

그렇지만 혐오할 권리는 나에게 없다 생각했어.

내가 그 삶을 살아본 것은 아니니까.

단정할 수는 없는 것이니까.

그런데 비오는 날의 나는 할아버지를 도우려 한걸까.

비판하고 싶었던 걸까.

비난하고 싶었던 걸까.

무기력을 파는 할아버지.

그날의 나는 그날의 할아버지를 '무기력을 파는 사람'으로 보았던거지.

 

지하철 할아버지는 자신의 희망을 보여주었고,

거리의 할아버지는 자신의 무기력을 보여주었어.

 

지하철의 할아버지는 자신의 희망을 눈치챘겠지.

거리의 할아버지는 자신의 무기력을 눈치챘겠지.

 

두 노인은 모두 자신이 무엇을 팔고 있는지 잘 알고 있었을 것 같아.

그들의 역사 속에서는 지금의 그 모습이 최선이었을 건데.

무기력을 파는 이의 모습이 눈에 걸리는 것은,

최선의 다른 방법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야.

거리의 할아버지가 비오는 날은 우산을 쓰고, 

의자가 있으면 의자에 앉고,

울 일에는 울고,

웃을 일에는 웃었으면 좋겠어.

희망을 팔수 있다는 걸 알았으면 좋겠어.

 

나는 무기력을 파는 할아버지와 희망을 파는 할아버지를 만났었어.

50년 뒤의 나는 어떤 최선을 택했을까?

궁금한 밤이야.

 

Photo by  diana spatariu  on  Unsplash

 

내 삶이 가치있다. 가치있었다 말할 수 있는 것은 나 뿐이라 생각해.

 

적어도 내 삶은 나에 의해 정의되어질꺼야.

 

내 삶 전체는 나에 의해 정의되어질꺼야. 

 

'나는 어떻게 살고 있나.'

 

'나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그런 이야기를 너에게 하기로 했어.

 

50년 뒤를 살고 있을 너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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