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2060.

 

-생활자립

 

2040, 의무교육이라는 개념을 해체시키기로 한 정부는 단계적으로 의무교육 과정을 줄여왔다. 남아있는 학교 교실에서는 의무교육 과목이었던 국어, 수학, 사회, 과학, 영어 등의 내용들이 단계적으로 선택과목으로 바뀌어 갔다. 과목별로 의무로 학습해야 하는 내용이 점차 줄어갔다. 그렇다고 의무교육과정이 줄어들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새로운 측면에서 필요하다고 판단된 의무교육과정이 추가되기도 했는데 생활자립과 권리에 대한 학습이 대표적이다.

 

생활자립 과목에서는 요리, 세탁, 주택수리 및 관리, 돈 관리, 세금 등을 배웠다. 요리는 초등학교 1학년부터 시작한다. 1학년은 불요리가 없는 채소무침, 샐러드 등을 요리하고, 학년이 올라가면서 칼과 불을 많이 쓰는 국요리, 볶음요리 등을 배운다. 이는 경제적 능력을 갖추어도 배달음식이나 밖에서 사서 먹는 것에만 익숙해진 독거인들이 늘어나면서 건강상 문제가 제기되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경제적 격차에 따른 음십섭취 간극, 남녀 간의 차이 없는 가사노동 참여 등을 위해서이기도 했다.

 

삶을 살아간다면 누군가는 꼭 해야 하는 설거지, 세탁, 전등 갈기, 간단한 전기기구 다루기, 세금 내기, 돈 관리 등에 대해 모르는 사람들을 일명 생활바보라 부르기 시작했고. 대인기피증이 심한 사람이 전등을 갈거나 갈아달라고 맡기지 못해 1년 넘게 어두운 집에서 생활한 일이 이슈가 되면서 이 개념이 생겨났다. 한편 모든 것을 물건과 서비스를 사고 배달시키는 것으로 해결하려는 현상과 환경파괴, 경제성장 저하 등이 맞물리면서 생활자립의 필요성이 확대되었다. 아이들뿐 아니라 성인들을 위한 생활자립교육도 진행되고 있다. 학교 대신 마을학습공동체나 홈스쿨링을 진행하는 아이들도 어느 곳에서든 이 과정을 이수해야 한다. 8-13살 사이에 말이다. 1학년의 한 수업시간을 살펴보자.

 

1학년 설거지 시간

 

교사 안녕하세요 여러분! 오늘은 설거지하는 방법을 배울 거에요. ‘나 설거지가 뭔지 안다하는 친구들 손들어볼까요?

 

아이들 15명 중 11명이 손을 든다. 아이들은 서로 누가 손을 들었는지, 안 들었는지 서로 쳐다보기 바쁘다.

 

교사 오 그렇군요~! 그럼 나 설거지 할 줄안다. 해봤다 하는 친구들 다시 손 들어볼까요?

 

아이들 11명 중 6명이 손을 든다.

 

교사 6명의 친구들이 설거지를 할 줄 아는군요~그럼 아직 잘 모르는 친구들과 서로 짝을 지어볼게요. 서로 도와서 해봅시다. 2학년부터는 매일 급식 먹은 그릇과 수저를 설거지 하는 거 알고 있나요?

 

아이들 ~!!

 

교사 우리도 해볼까요?

 

아이들 아니요!!

아이들 !!(동시에)

 

교사 오 의견이 다양하네요~그런데 설거지를 안하면 그릇을 씻어줄 사람이 없어서 다음날부터 밥을 못 먹게 되는데 괜찮아요?

 

아이들 웅성웅성 거리거나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교사를 쳐다본다.

 

교사 우리는 자기가 먹은 건 자기가 치우고 자기가 필요한 건 자기가 해나가는 것을 배우려고 해요~자 그럼 짝궁과 같이 여기로 모여볼까요?

 

잠시 후 아이들은 설거지 하는 교사의 모습을 보고, 각자 계단을 타고 올라가서 그릇 한 개와 수저한 쌍을 설거지하려고 고무장갑을 낀다. 싱크대는 성인 키높이보다는 낮으나 최고학년의 평균키 정도로 맞추고 그보다 작은 아이들이 좀 더 올라가 하는 형태로 하고 있다. 어떤 아이들은 고무장갑의 짝을 거꾸로 해서 팔에 끼우고는 손가락이 안 굽혀진다고 불편해하고, 어떤 아이는 그릇을 계속 떨어트렸다. 이런 경우를 대비해 그릇은 깨지지 않는 플라스틱류를 사용한다. 그릇을 떨어트린 아이의 짝이 계단을 내려가 주워오기를 반복하였고, 세 번째가 되자 싸웠다. 어떤 팀은 물을 틀어놓고 그릇에 물튀기기 놀이를 하다 눈에 물이 튀어 움찔한다. 교사는 이리저리 다니며 아이들이 끝까지 해볼 수있도록 반복해서 알려준다. 이미 가정에서 설거지를 해본 아이들은 다 쓴 고무장갑을 털고, 걸어두거나 헹주를 빨아 고사리 손으로 짝과 함께 비틀어 짜거나, 옆친구에게 훈수를 두면서 놀았다. 이런 수업은 한 번의 체험으로 끝나지 않고,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해나갈 수 있도록 반복한다. 그래서 설거지와 요리는 실제 학생들의 식사시간에도 적용되어 아이들에게 여러 역할이 주어진다.

 

초등학교 6학년 정도가 되면 대부분 집에서 형광등 갈기, 못을 박거나 빼기, 간단한 가구 조립, 컴퓨터 바이러스 방지 시스템 점검 등을 할 수 있고, 적어도 30가지의 요리는 할 수 있다. 처음에는 생활자립 교육과정에 반감을 가진 부모들도 많았으나 이 과정이 정착되고 10년이 지나면서 가정에서, 사회에서 큰 변화를 절감하게 되면서 성인교육까지 확대되었다. 미처 학교에서 배우지 못한 어른들의 생활자립 문제가 반복해서 대두되었기 때문이다.

 

-권리교육

 

앞서 여러 가지 의무교육 과목들이 줄어들고, 선택제로 바뀌었다는 설명을 했다. 또한 새롭게 생겨난 의무교육이 있다고 했다. 모든 사람들에게 공통적으로 살아가는데 있어서 필수가 된다고 선택받은, 그것은 권리교육이다. 인권이라 말할 수 있고, 주권이라 말할 수도 있겠으나, 사람, 대한민국 국민에게만 한정 짓지 않고 타국 사람, 동물, 환경, 세계평화 등 넓게 다루고 있기 때문에 이를 통틀어 권리라고 칭했다. 초등학교 5학년 수업을 살펴보자. 이 날의 주제는 세계인권선언이다.

 

교사 어제했던 활동 이어서 모둠별 진행을 해주면 되요. 오늘 진행자가 누구누구지요?

 

아이들이 4-6명씩 모둠으로 모여 앉아 있고, 그 중 한명씩이 손을 들었다. 팀별로 진행자가 있는지 확인한 교사는 세계인권선언 이해하기를 시작하라고 하고, 모둠을 돌아다닌다.

 

이세상팀은 1948년 세계인권선언을 살펴보고 있었다. 이 선언문은 1948년 유엔총회에서 채택되어 2037년까지 기준으로 삼던 내용이다. 2037년 세계 흐름의 변화를 반영한 세계인권선언문이 새롭게 재탄생하면서 지금까지(2060) 각국가에서 주요 기준으로 보고 있다. 이세상팀은 과거 선언문과 지금의 선언문을 비교해서 읽기를 하고 있었다.

 

U 예전에는 30조의 내용으로 되어 있어. 지금은 60개 조항이고.

I(진행) 내용이 달라진거 찾아서 이야기하기 해보자. 어제 옛날 거 15조까지 했어. P부터.

P 16조 읽어볼게.

 

16

1. 성인 남녀는 인종, 국적 또는 종교에 따른 어떠한 제한도 없이 혼인하고 가정을 이룰 권리를 가진다. 그들은 혼인에 대하여, 혼인기간 중 그리고 혼인 해소시에 동등한 권리를 향유할 자격이 있다.

2. 혼인은 장래 배우자들의 자유롭고 완전한 동의하에서만 성립된다.

3. 가정은 사회의 자연적이고 기초적인 단위이며, 사회와 국가의 보호를 받을 권리가 있다.

 

여기서 지금은 몇 개 바뀌었어. .. ‘성인 남녀는지워지고, ‘사람은 누구나로 바뀌었어. ‘가정은 사회의 자연적이고 기초적인 단위이며지워지고...‘모든 종류의 가정은으로 바뀌었어.

 

T 성인이 뭐야?

P ..그거는 모르는데. 들어본 것 같은데.

교사 검색해볼까?

 

U가 탭을 눌러 검색을 한다.

 

U 자라서 어른이 된 사람이래.

T 어른이라는 말이야?

P 그런 것 같애.

교사 남녀는 왜 지워졌지? 남녀도 사람인데.

A ..남자랑 여자만 결혼하는게 아니라서요?

교사 그런 것 같지?

P 진짜 옛날 이야기이네요!

U 우리 옆집 아저씨들도 부부야. 둘다 몸은 남자로 태어났는데 마음은 서로 좋아하는 마음이래.

I 그럼 이렇게 바뀐건 이런 아저씨들도 포함하려고 그런거겠네?

P 그런 듯.

I 선생님이 주신 공통 질문 던질게. ‘이 조항에 대해 만족하나요?

 

T, P, U는 손을 들었고, A, I는 손을 들지 않았다.

I A 너는 왜 만족 못해? 나는 사람말고 성인사람이라고 해야할 것 같아서야. 우리는 아직 결혼 못하잖아.

A , 나는.. ‘모든 종류의 가정은 사회와 국가의 보호를 받을 권리가 있다.’가 마음에 안들어. 가정이 아니라도 사람이면 다 사회와 국가의 보호를 받는다고 앞에 나와있잖아. 그런데 왜 두 번쓰는지 모르겠어.

교사 모든 사람에 가정이 포함되지. 맞아. 그럼 A 의견과 비슷하게 보면 5조 내용도 3조 내용 안에 포함되는 것 같은데 왜 따로 한번 더 적었을까?

 

3조 모든 사람은 생명과 신체의 자유와 안전에 대한 권리를 가진다 .

5조 어느 누구도 고문, 또는 잔혹하거나 비인도적이거나 굴욕적인 처우 또는 형벌을 받지 아니한다.

 

P 고문하는 일이 많았어서 그런 것 같아요. 예전에는 잘못이 있어도 없어도 고문하는 일이 많았다고 했어요.

I 잘못을 저지르면 안된다.’고 말하지만, 우리가 거짓말을 너무 많이 하면 거짓말을 하면 안된다고 한번 더 말해주는 것처럼.

 

P, A, 교사 ~~

 

이세상팀을 살펴보던 교사는 다른 팀으로 간다. 그렇게 세계인권선언을 2-3개씩 읽으며 학습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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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79526일 한가족의 일상

 

AB는 놀이커뮤니티에서 연극공연을 함께 하면서 연인이 되었고, 1년의 연애 후 결혼을 해 딸 T와 함께 살아가고 있다. A26세이고, 의류점에서 남성의류를 판매하는 일을 한다. 그는 오전타임 일을 하기 때문에 9시에 출근해서 1시까지 근무를 한다. A의 부모세대에도 대다수 국민들의 하루 평균 근무시간은 6시간이었으나 30여년이 지나면서 4시간으로 낮춰졌다. 대부분의 일자리는 오전타임, 오후타임, 저녁타임으로 나뉘고 각 타임마다 일하는 노동자가 다르다. 그렇다고 급여가 부모세대에 비해 낮지 않다.

 

2000년대 내내 갈수록 일자리가 줄어들고, 인구수가 늘어났고, AI 대신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은 제한적이어지면서, 존엄한 일자리에 대한 이슈가 오랫동안 대두되었다. 새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주된 과제는 많은 국민들이 자신의 일자리를 가지고, 돈벌이를 하여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는 고용구조를 마련하는 것이었다. 일자리를 인위적으로 늘릴 경우 제한된 국가 예산이 밑빠진 독에 물붓기 식으로 빠져나간다는 비판이 계속되었고, 실제적으로 노동문화를 바꾸어 인당 하는 일의 양을 대폭 줄여나가기로 했다. 일의 값어치를 점차 높여 가는 작업이었다. 주당 근무시간 최대치를 줄여나가기 시작했고, 2040년대는 주당 35시간(17시간*5), 2050년대는 주당 30시간(16시간*5), 2060년대는 주당 25시간(15시간*5), 2070년대는 주당 20시간(14시간*5)이 되었다. 앞으로는 주 5일제에서 주4일제로 조정해나간다고 한다. 아마 여기 즈음이 최고치이지 않을까 싶다.

 

사실 유럽 등에 비해 근무시간 조정이 매우 늦은 편이다. 20년대에는 과로사도 굉장히 많았고, 기록되지 않는 과잉노동현장도 많았으나 경제구조가 유지되기 위해서 고용주 등도 어쩔수 없이 시대흐름을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소비자가 사라지면 안되니까. 어쨋거나 A가 일하는 오전 시간에도 오후, 저녁근무를 하는 많은사람들이 매장을 오가기 때문에 특별히 일이 적고, 급여는 많이 받는 그런 건 아니라는 말씀.

 

A가 근무를 하는 동안, B는 일어나 T와 시간을 보낸다. 월요일부터 화요일은 B가 공동육아에 참여하는데 T, K, Y네 등 같은 라인에 사는 다섯 집 아이들이 모여 함께 놀고, 배우고, 쉬는 등의 활동을 같이 한다. 부모 중 한 사람씩 와서 함께 아이들과 아파트 근처 동산을 산책하기도 하고, 촉감놀이 등을 함께 하기도 하며 시간을 보낸다. 처음에는 5명의 부모가 모두 왔었지만 실내 공간에서 아이들과 함께 할 때는 5명 중 2-3명이 아이를 돌보고 나머지는 개인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시간을 보내는 방식은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부모교육을 통해 학습하면서 의논하여 결정한다. 아직 T3살이라 야외활동에는 제한이 많지만 BA는 공동육아를 통해 훨씬 더 풍부한 감각과 관계를 경험하게 할 수 있어 만족하고 있다. 부모 개인들에게도 정서적, 체력적으로 많은 도움이 된다.

 

오후2시가 되기 좀 전에 남편 A가 집에 도착하고, 공동육아 후 부모들이 흩어지면 BT와 함께 집으로 와 출근준비를 한다. B는 집 근처 내과 간호사직을 맡고 있다. 다른 직종들과 마찬가지로 오전근무, 오후근무가 나뉘어 있기 때문에 BA와 의논하여 근무시간대를 엇갈리게 맞추었다. 아이를 직접 함께 돌보고 싶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가면 시기를 보고 근무시간을 오전 시간으로 함께 맞추고, 오후, 저녁은 개인시간, 부부시간도 늘여가자고 했다. 근무시간 평균이 하루 4시간으로 맞춰지면서 그동안 계속되었던 여성권리운동 등이 육아 분담에 실제적으로 변화를 가져왔다. 육아에 대해서는 공동육아, 홈스쿨링 개념도 훨씩 익숙해졌고, 이제 아이가 있는 100가구 중 80가구는 공동육아나 홈스쿨링을 간접체험해보고 인지하고 있으며, 40가구는 공동육아를 실행하고 있다.

 

노동현장에서는 성별에 상관없이 요구되는 시간으로 인해 성별 진급 차이나 노동시간 차이, 임금 차이 등의 문제가 대폭 줄어드는 효과를 이루었다. 시장에서는 남성들을 위한 다양한 커뮤니티, 취향사업, 인문학 활동 사업 등도 활성화 되었다. 결혼, 육아, 노동 이러한 것들을 동시에 실행하는 대한민국의 많은 청년들은 함께 키우고, 더 함께 일하는 구조를 택하며 다채로운 삶을 펼쳐나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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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 커뮤니티(2061)

206152015P 이야기

 

조용히 불어오는 바람이 P의 얼굴을 스치고, 햇살은 적당히 따뜻하게 내려온다. 사람들의 머리칼, 어깨, 손 등으로 내려온 햇살을 머금고 주말이 시작된다. P는 자전거 폐달을 연신 밟아 골목을 꺽어 지나간다. 큰 거리에 나서서 우회전, 10분 정도 더 타고 가면 15층짜리 건물이 보인다. 건물 외벽에는 [10’s]라는 글귀가 도드라져 보인다. 자전거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5층에 내린다. 건물 안은 흡사 시장 같기도, 공연장 같기도, 놀이터 같기도 하다. 엘리베이터 바로 앞은 투명 유리벽 넘어로 13O가 손거울 만들기 클래스를 진행하고 있고, 10세부터 17세까지 다양한 10대들이 거울에 한지를 물에 풀어 붙이기를 반복하고 있다. O의 클래스를 지나 우회전을 하면 17X가 작은 무대(동그란 나무 무대) 위에서 일인연극을 하고 있다. 10명 남짓한 사람들이 무대 주변을 둘러싸고 앉아 공연을 보고 있다. 그때 X가 관객에게 말을 건다.

 

X T! 너는 어떻게 생각하니? 내가 이쁜 게 내 잘못이야?

 

관객 T가 당황하며 말문이 막히자, 주변 관객들이 키득키득 웃으며 선택당한 T를 부러워하기도, 자신에게 물으면 뭐라고 답할까 고민하기도 한다.

 

X (T의 어깨를 잡고 흔들며)말 좀 해보라구 T! 멋진 게 내 잘못이냐고!

 

연극을 곁눈질하며 지나가면 그 옆에 아무거나 이야기해라 적힌 작은 입간판이 보이고, P는 투명 유리벽 안으로 들어가 겉옷을 옷걸이에 걸쳐 헹거에 걸고, 명찰을 목에 메고, 조명을 켜고, 커튼을 젖힌다. 목걸이 명찰에는 스몰토커 p’라고 적혀 있다. 투명벽 옆 작은 스위치를 누르니 공중에 화면이 하나 떠오르고, 그날의 이야기모임 일정이 뜬다.

 

1타임: 주제 빌어 먹을 세상오후1-312

2타임: 주제 우리가 꼭 알아야 할 것오후 4-611

...

 

P‘1타임에 있는 ‘12을 누른다. 화면에는 명단확인’, ‘연락하기가 뜬다. ‘연락하기를 클릭한 P는 목에 걸린 마이크 탑재 이어폰을 머리에 쓰고 말한다

 

P 안녕하세요, 스몰토커 P입니다. 오늘 1시에 시작되는 빌어 먹을 세상이야기는 일정대로 정해진 시간에 시작할 예정입니다. 조심히들 오세요!

 

이어폰을 다시 목에 걸치고 공간에 음악을 틀고 자리에 앉으려는 순간 똑똑. I가 웃으며 음료 두잔을 들고 들어온다.

 

P (웃으며)일찍 왔네?

I 마술쇼 끝나고 시간이 남아서. (음료를 건네며).

 

 

PI가 가져온 핫쵸코를 한모금 홀짝인다. 몸에 활기가 좀 더 도는 느낌이 들었다. P가 연신 음료를 마시는 중, I는 좀 전 화면을 켜서 일정표를 확인한다.

 

I 와우 오늘 주제(빌어먹을세상)는 좀 센데?

P 그래?

I 안그래?

P 글쎄?

I 이제 한지 좀 됐다고 난이도가 올라가는데? 빌어먹을 세상이라니..

P 한지 좀 됐지. 나 여기 운영한지 1년 다되가.

I 벌써?

P 어 벌써. 넌 얼마나 됐지?

I 난 한 6개월? 쉬엄쉬엄해라. 여기는 우리들 놀이터라고.

P 그니까.

I 그니까?

P 그니까, 노는거니까 왜 쉬엄쉬엄해? 정신없이 해야지.

I .. 오케이 그래, 내가 졌다. 너 이야기모임도 좋지만 내 공연도 보러와 재미있다구~

P 알았어. 이번 주 중에 갈게.

I 에그, 또 그소리. 그래 언젠간 오겠지. 나중에 보자 나도 쇼 준비하러 갈거야.

P 그래.

I 싱거운 녀석..스몰토크 때는 완전 딴판이 된다니까.

 

어느덧 1250분이 되고 사람들이 하나둘 오기 시작하더니 11명이 원형 테이블을 둘러싸고 자리에 앉아 있었다. P는 음료를 따라주며 참여자들의 얼굴을 살폈다. 반 정도는 아는 얼굴이었고, 반은 모르겠다. 자신을 스몰토커라 소개하면서 이야기 모임에 참여하거나 진행해본 적 있는지 물은 뒤 오늘의 주제를 알려주는 P. 다소 어색해 하면서도 이런 분위기가 신기하고 궁금한 사람, 익숙하고 잘 알아서 내가 자주 와봤음을 티내고 싶은 사람, 주제가 굉장히 마음에 들어 무슨 말을 꼭해야 할지 머릿속으로 정리 중인 사람, P에 관심있는 사람 등이 P의 설명을 듣고 있다. 그리고 한시간 뒤 자신을 답답하게 했던 각종 사건, 사고에 대해 이야기를 하느라 그들은 얼굴을 붉히고, 목소리를 떨고, 눈을 부릅떴다.

 

빌어먹을 세상은 이야기 꺼리가 많아서 좋다.

 

어느덧 두 시간이 흘러 그들은 각자 자신을 답답하게 해온 것들에 대한 글을 적고 헤어졌다. 빌어먹을 세상 따위 쿨하게 입장해주겠다는 표정으로. 그 중 한명이 다시 들어와 P에게 묻는다.

 

A 이 주제 담주에도 하면 안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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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50년부터 전국 각지에 설립된 청소년놀이터는 현재 총 30.

평균 층수 15,

층별 청소년 운영공간 20-25,

청소년노동자(운영자) 수 약 700.

월평균 이용자 21만명.

 

전국 청소년 놀이터 월평균 이용자 210,000*30=3,600,000(360만명)

 

건물 건축 디자인 설계 과정에서부터 설립예정 지역의 청소년들 의견을 기초자료로 사용하여 각지마다 스타일은 다르지만 흡사 2020년대에 있던 백화점과 같은 식이라 생각하면 되겠다. 청소년 놀이터의 유일한 공통점은 청소년에 의해, 청소년을 위해, 청소년이만들어 간다는 것이다. 운영하는 주체도 청소년, 참여하는 주체도 청소년이 되는 이 공간은 자유를 기반으로 하는 청소년들의 공간이다. 공간 운영비도 청소년들이 자체 모금 혹은 운영자들이 버는 수익으로 모아 운영이 되고 있다. 알바 겸 활동하는 운영자도 있고, 진짜 놀기만 하려고 운영하는 이들도 있다.

 

경제적 능력이 없다는 이유로, 선거권이 없다는 이유로 사회에서 더욱 배제되어 가던 청소년들에게 다양한 권리를 회복시켜주자는 여론이 확대되었고, 선거권 연령이 만18(2019)에서 만16(2029), 13(2037)로 낮추어지면서 교육과정이 폐지되고, 교육에 대한 의무감에서 해방되면서 학교라는 형식의 틀 외에 다양한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시간이 허용되었고, 자연스럽게 청소년 자유, 놀이 등으로 관심이 이어졌다. 그 중 청소년 놀이터 개발 프로젝트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놀이를 중심으로 운영되는 이 곳은 청소년들이 자신이 운영하고 싶은 놀이를 기획, 제출하여 허가를 받으면 세달 동안 한 공간을 활용하여 진행할 수 있다. 허가는 그 지역 청소년들의 청소년투표로 매달말일 진행이 된다. 공간 수는 넉넉할 수도 있지만 한계가 있으므로 선정을 해야 하고, 특정 누군가가 선정하는 것은 옳지 않기 때문에 시간과 돈을 들여서라도 투표를 통해 놀이터를 구성한다. 참고로 온라인투표로 진행되기 때문에 비용이 많이 든다고 볼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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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전국 각지에서 어린이들의 의견을 수렴하며 만들어지는 놀이터들이 생겨나고 있었다.

아이들 상상은 현실이 된다

http://www.idomin.com/news/articleView.html?idxno=759347

 

청소년들의 놀이공간에 대한 움직임도 있다. 청소년문화의집은 동아리라는 형태로 운영되는 경우가 많았다.

놀 곳 없는 농촌 청소년특별한 놀이터서 즐겨요

http://ch.lghellovision.net/news/newsView.do?so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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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거(2049)

204951823M 이야기

 

M이 다급한 발자국 소리를 내며 지하로 내려간다. 아슬하게 지하철을 탄 M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귀에 꽂힌 이어폰을 눌러 음악을 듣는다. 그때 메시지가 와서 폰을 누르면 문자와 함께 메시지 내용이 이어폰을 통해 들린다. Q의 메시지다.

 

AI 올 때 마늘 좀 사와. 마늘 깜박했다!

 

M은 시계를 잠시 본다. 640. 퇴근하고 가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는데 동료들이랑 상사 뒷담화를 까다가 시간을 놓쳐 버렸다.

 

M 그래도 늦지는 않겠네.

 

772역에 지하철이 멈추고 M은 빠른 걸음으로 걸어 마늘을 구매한 뒤 그 곳으로 향한다. M과 동네 친구들이 자신들의 집보다 더 오래 머무는 곳. 자는 거 빼고 먹고 놀고 보고 다 되는 곳. 아 아주 가끔은 단체 캠핑식으로 자기도 하지만. 772 마을에 사는 누구나 오갈 수 있는 동네 마을 공유공간이다.

 

동네 마을 공유공간은 20-30년 전에도 존재했고, 각 동네마다 운영하는 다양한 형태들이 있어왔다. 협동조합형 가게(식료품점 혹은 카페 등)가 있어 여기서 같이 놀기도 하고 독서모임도 하고, 동네 플리마켓 등 파티를 여는 등의 활동을 했다. 혹은 공유부엌이라고 동네 사람들과 정기적으로 모여 같이 요리를 해서 식사를 같이 먹는 공간들도 늘어나기 시작했다. 청년들의 자유공간, 청소년들의 자유공간 등도 계속해서 생겨나고 만들어졌고, 그 운영방식은 더 다양해져 갔다.

 

참여자들의 자유로운 이용이 가장 중요했기에 시에서 운영하는 공간은 지금은 운영시간을 24시간 오픈제로 바뀐 경우가 대다수다. 그에 따른 인건비를 들이고 모두 정부, 지자체에서 운영할 수는 없기에 신뢰를 바탕으로 주민들이 자체 운영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M이 아기일 때만 해도 공간을 더럽게 쓴다거나, 불을 안끄고 간다거나 물건을 파손시키는 등의 문제들이 잦았지만 주민 회의로 자체 관리하고 운영규칙을 만들어 진행해오길 10년이 넘어가니 차차 이런 경우가 많이 줄었다. 동네 사람들이 서로를 알고 지낸지 그만큼 오래되면서 함부로 행동하여 신뢰를 잃지 않으려는 분위기가 형성된 듯하다.

 

지자체 운영공간 외에도 작은서점, 작은카페, 작은가게, 개개인의 집에서 공유공간을 운영하는 경우는 많다. 지금 M이 가는 곳은 Q네 집이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QNTAB의 공동주거 주택이다. M은 그들과 옆옆집에 살고있는 독거인이다. M은 혼자 살기를 지향하지만 혼자이고 싶지는 않은 사람으로 혼자 있는 집을 매우 사랑하고, 다 같이 사는 Q네 집을 즐겨간다.

 

M 헤이~

T 왔는가?

Q 마늘?

M 여기.

 

T는 언제나처럼 친구들을 맞이하고, 노래를 부르고 있었으며, AB는 마당에서 기르는 채소들로 샐러드, 무침 나물을 만들고 있었다. Q는 두루치기를 만들려고 고기를 양념에 절여두고 있었는데 마침 와준 M의 마늘을 씻어 갈아 넣는다. NM은 마당에 놓은 넓고 오래도니 나무 테이블을 닦고, 수저를 놓는다. 오늘은 이들의 집에서 영화를 보기로 해서 T는 전기선을 밖으로 빼어 노트북을 배치한다. 180cm 자기 키만큼 하얀 스크린을 올린다. 그러다 어느새 해가 떨어지고, 태양열 조명이 켜지고, 음식들이 상에 올려진다. M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잡채이고, 다들 자리에 앉아 영상이 틀어지자 M은 잡채를 홀짝홀짝 마시기 시작한다.

 

M 너희 잡채는 왜 이렇게 더 맛있냐?

A (신나서 M을 쳐다보며)그치?

B 영화나 봐.

M 너희는 영화를 보거라, 나는 잡채를 더 퍼올테니..

 

M은 주방에 가서 프라이팬에 남은 잡채를 몽땅 덜으며 흐뭇한 미소를 짓는다.

 

2049년의 공동주거는 여러 형태가 있는데 그 중 하나는 시, 지자체에서 4-7명이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주거 형태의 공동주택이다. 2030년즈음부터 주택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한가지 방안으로 공동주거주택을 건설하기 시작했고, 연령, 성정체성, 생활패턴 등을 고려하여 원하는 조건에 따라 공동주거인을 연결해주는 정책을 펼쳤다. 내가 이성애자 여성, 30, 아침에 일어나고 밤에 자는 형일 경우, 내 정보를 입력하고, 동시에 내가 원하는 공동주거인의 조건을 입력한다. 이성애자 여성과 공동주거하고 싶을 경우 그렇게, 성정체성은 상관없이 여성이면 그렇게 표시를 하고 그에 맞게 사람들을 묶어 미팅을 가지고 논의해볼 수 있도록 행정복지센터 공무원들이 진행하고 있다.

 

다른 하나는 원하는 이들끼리 모여 공동출자를 하여 협동조합식으로 집을 구해 함께 살아가는 것이다. 공공이냐 민간이냐의 차이인데 주거에 대한 불안전함을 없애고자 장기간 정책이 시행되고 있어 이제 개인소유 주택이 있는 이들은 30%, 공동출자로 집을 구한 경우는 25%, 국가 지자체 지원 주택(개별주택이든 공동주거주택이든) 거주인은 45%에 달한다.

 

실제로 Q40, 이성애자 남, 도배 일을 하며, A25세 여, 양성애자, 작가다. B31세 남, 동성애자, 요리사이고, T28세 여, 이성애자, 청소부이다. M은 23세 여, 이성애자 디자이너이다. 대구시를 통해 만난 이들은 여러차례 만남을 통해 룸메이트들을 찾았고, 성지향에 대해서는 프리하고, 나이는 20-45세 사이였으면 한다는 기준을 가진 이들의 조합이었다. 한두 명은 생활을 해보다 나갔지만 지금 멤버들은 함께 살아가고 있다. M은 같이 살다 나온 이 중 한명 인데 함께 살아가는 데서 겪어야 하는 조율 등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공간을 가지고 싶어서 독립했다. 그러나 이들의 분위기, 공간이 주는 매력을 끊지 못해 근처로 집을 구하고 거의 매일 저녁을 함께 보내고 간다. M이 잡채를 다 먹고 생야채를 갈아넣은 쥬스를 홀짝 마신다.

 

T M, 근데 너 맨날 이렇게 올거면 그냥 다시 들어와~!

M 어 싫어.

T 너 지금 거의 같이 사는거야 알지?

M 아냐. 난 혼자 살고 싶어.

Q 냅둬라, 들어올 때 되면 들어오겠지.

M 우리집도 우리집, 여기 너희들 집도 우리집인거야.

T 누구 마음대로?

B (화면에서 눈을 못떼며)시끄러 조용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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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951524Y 일기

 

오늘은 스승의 날. 중학교 1학년 때 만나 지금까지 연락하는 친구들 5명 남짓이 모여 담임 선생님 P를 찾아갔다. 201914살에 만났던 우리는 이제 24살이 되었고, 초임 교사였던 P 선생님은 이제 30대 후반이다. P 선생님은 교사 생활이 처음이었고, 우리는 중학생이 처음이었다. 우리들의 만남은 타이밍이 적절했다. 15살 때는 우리들의 삶이 많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2020년 코로나바이러스가 퍼지면서 전 세계적으로 학교를 등교하지 않는(못하는) 아이들이 넘쳐났고, 우리는 일 년에 등교를 1/3도 하지 않는 초유의 사태에 이르게 되었다. 선생님과 친구를 만나기도 쉽지 않았고, 함께 공부하거나 놀 일도 거의 사라졌다. 그 당시는 직접 느끼지 못했지만 많은 것들이 온라인으로 대체되면서 대학생들도 여러가지 의문을 직접적으로 드러내기 시작했다. 대학을 왜 다녀야 하는가에 대해서. 2-3학년을 코로나와 함께하던 우리는 중1의 추억만을 가지고 고등학교를 입학하게 되었다. 그리고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우리 지역에 있는 대학을 포함하여 여러 대학들이 줄줄이 사라지는 것을 매년 목격했다.

 

P 선생님은 5-6년에 한 번씩 찾아가는 우리들에게 맛있는 것을 사주시고, 무엇을 하고 지내는지 물어보고 메모를 해두셨고, 우리는 그녀와의 추억이 좋았어서, 그녀가 우리를 기억하고 관심 가지는 것이 좋아서 계속 찾아갔다. 수시로 만나 예전 이야기를 나누는 우리들에게 종종 이렇게 스승을 찾아가는 행사는 일종의 여행에 가까웠다. 20대가 되어서는 처음 찾아가는 자리라 선생님은 법적으로 성인이 된 우리들의 생활 변화를 궁금해하셨다. 대학을 갔는지, 취업을 했는지 어떤지 등등. 그녀에게 전한 우리들의 상황은 요약하자면 아래와 같다. 앞뒤 상황이 헷갈릴 수 있는 부분은 선생님에게 예전에 말했거나 아직 말하지 않았지만 여기에는 적겠다.

 

Q: 얘는 지금 직업군인이 되었다. 20살에 바로 군생활을 시작했다. 우리가 19살이 되던 해 징병제에서 모병제로 바뀌면서 대거 취업 일자리가 생겨나, 그 당시 운동 꽤 하는 친구들에게 인기가 아주 많았다. 소수를 뽑더라도 뽑혔겠지만 뽑는 수가 워낙 많다보니 Q는 어렵지 않게 취업해서 우리들 중 E 다음으로 일을 시작했다. 지금은 직업군인 5년차다.

 

W: W는 대학은 가야 한다는 부모님의 성화에 못이겨 고등학교 내내 대학 입시 준비를 했었다. W는 악착같이 공부했다. 대학입학까지는 부모님 뜻대로 하지만 대학을 가면 집을 나와서 자기 맘대로 살겠다고 거의 매일 우리들에게 이야기 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W는 지금 또래 친구 몇몇과 주택건축사 창업을 했다. 고등학생 시절 건축을 전공하기로 결정하고 처음에는 $대학(건축으로 그럭저럭 유명하고 취업이 잘된다고 하고 W가 도전하기에 무리가 없어보여서)에 가려 했는데 재정난으로 $대학이 사라졌다. 2, 3순위로 생각해둔 학교도 사라져 결국 고3 말 수능을 칠 때 건축학과가 있는 대학 중 W가 갈 수 있는 곳은 대전에 있는 &대학 뿐이었다. &대학은 많은 학과를 정리하고 건축 중심 특성화 대학으로 일찍 돌아서려 추진, 준비하면서 결과적으로 건축계열에서 살아남는 대학이 되었다.

 

그러나 W가 생각하기에 건축사무소 등에서 진행하는 건축과목들이 충분히 많고, 일을 하면서 배울 수 있는 인턴제도 있어 대학을 다니는 것은 무의미 했다. 돈을 벌면서 배울 수 있는 것을 왜 돈을 쓰면서 배우느냐는 것이었다. W&대학 대신 한 건축사무소 인턴으로 들어가 필수 과목을 배우면서 일을 시작했다. W의 대학 준비가 헛수고가 되어버려 우리는 W가 과거를 후회하지 않을까 염려했지만 다행히 W가 신경써서 공부해온 수학, 물리 등을 인턴 일을 하며 발휘할 수 있었다.

 

처음에 노발대발하시던 W 부모님은 다들 대학을 안가고 잘 살아가는 것을 보시고 3년이 지나서야 마음을 좀 비우셨다고 한다. 그래도 W네에서 대학졸업장이 부모님에게만 있어서 어머니는 가끔 속상한 마음을 소리로 내지르신다고 한다. 그놈의 종이쪼가리가 뭐라고.. 오해말라. 내 말이 아니라 W가 자주 하는 말이다. 어쨌거나 우리들이 나이 들어 살게될 주택은 W에게 맡기기로 결론지었고, 우리는 W의 지금을 매우 만족스럽게 보고 있다.

 

E: 얘는 우리 중에 가장 빠르다. P 선생님도 전에 찾아뵈었을 때 들어서 알지만 그녀는 고등학교도 가지 않았다. 검정고시 준비로 자격을 얻었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우리의 중2, 3학년 시절은 코로나라는 감염 질병으로 인해 화상학습이 주를 이루었다. 비대면 수업을 반복하면서 E는 혼자 공부하는 것이 생각보다 자신에게 잘 맞다는 것을 느꼈다. 2년 동안 거의 혼자 공부하다시피 지냈는데 고등학교 과정도 하면 되지 않을까 생각해서 입학하지 않았다. 처음에 우리는 후회하지 않겠느냐는 걱정의 말을 했지만 속으로는 다들 부러워했다. E에게는 일찍부터 자기 확신이 있었다. 온전히 스스로 선택하고 그것을 밀고 나갈 수 있는 자신감 말이다.

 

E1년 만에 검정고시 합격증을 받았다. 고등학교를 안가는 대신 부모님 가게(중국집인데 탕수육이 이 가게를 먹여살린다.)에서 일을 시작했는데 18살부터는 운전면허를 따고 배달을 다니고, 혼자 여행도 많이 다녀 우리의 부러움을 한 번에 받았다. 여기까지가 P선생님이 아는 소식이고 E는 현재 부모님 가게를 프랜차이즈로 성장시켜 분점을 운영하고 있다. 3개를 운영 중인데 E 말로는 5년 뒤에 2배 이상 규모를 키울 것이란다. 그녀는 우리 중 돈을 제일 잘 번다.

 

R: R은 우리 중 유일하게 대학을 갔다. 코로나 이후 감염병과 환경 문제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면서 우리들도 그런 류의 매체를 자주 접했고, R은 집에서 뒹굴거리다 평소 보지 않던 다큐(기후위기 관련)를 보고 인생의 방향을 결정지었다. 환경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이 되기로 말이다. 그는 처음에 환경운동가가 되어 다큐를 제작하거나 플라스틱 사용 반대 운동 같은 것을 하려 했다. 1 때는 분명 우리 모두 놀기 바빴고, 그 중 R이 가장 놀기 바빴는데 그때 많이 놀아서 그런가 애가 고등학생이 되더니 공부를 미친 듯이 좋아했다. 과학처럼 자기가 관심 있는 분야만 그랬지만. 어쨌든 이 아이는 지금 환경문제 해결학과에 입학하여 4년 동안 여러 학습을 하고, 올해 대학원에 입학하여 바이러스학과와 연합 연구를 진행 중이라고 들었다. 구체적으로는 모르지만 얘는 언젠가 큰일을 해낼 것이다.

 

선생님은 요즘 대학이 연구 중심 활동이 아니면 효용 가치가 많이 떨어진다며, 연구 활동을 원하는 R이 대학에 간 것은 잘한 일이라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들으니 아직 돈을 벌지는 못하지만 국가에서 지원해주는 대학에서 자신이 해결하고 싶은 문제를 가지고 산다는 것이 꽤 근사해 보였다. 대학이 사라지면서 국가지원 대학이 좀 더 탄탄해진 것은 천만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Y(): 나는 파고들고 싶은 분야도 없고, 딱히 좋아하는 것도 없어서 아무 생각 없이 고등학교 시절을 보냈다. 부모님은 항상 알아서 하라로 했다. 대신 ‘21부터는 나가서알아서 살아라고 했다. 처음에는 아직 멀었다고 생각했고, 설마 준비가 안되었는데 쫒아낼까 싶은 마음도 있었다. 고등학교를 다니는 내내 아무 터치하지 않는 부모님이 점점 부담이 되었다. 가끔 독립 계획을 물어오는 부모님에게 아무 말이나 둘러대다가 19살이 되자 슬금슬금 압박이 생겼다.

 

그래서 나는 직업군인이 되는 Q를 따라 가보려 했다. 그런데 내가 유일하게 싫어하는 것이 운동이었던 터라 몇 번 해보다 바로 포기했다. E가 자신의 가게에서 일하려면 하라고 했지만 그 당시는 자리가 필요한 것 아닌 것 같았고, WR처럼 대학에 갈 생각도 없어 걱정이 되었다. 뭘하지? 돈을 얼마나 벌어야 독립해서 살 수 있지? 그러다가 어느 날 친구들이 패션 관련 온라인 창구를 만들어보라고 했다. 내가 패션 제안을 잘 해준다면서 말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말 한마디에 무작정 시작한 것이 굉장히 무모했다 싶지만 그 덕에 나는 프리랜서 활동을 시작했다. 패션을 조언해주는 화상 어플을 운영하면서 패션 관련 모임, 전시, 출판 등의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처음엔 이걸 수익이라 해도 되나 싶을 정도였지만 21살에 최저생계비 달성, 지금은 저축도 정기적으로 하고 인지도도 꽤 생겼다.

 

선생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의 삶도 굉장히 급변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예전에는 교사가 안정적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항상 베풀어도 된다고 막연히 생각했는데 이야기를 들어보면 아닌 것 같다. 대학이 이렇게 사라지고, 우리들도 5명에 1명 꼴로 대학을 가는 것처럼 학교도 수많은 사회변화에 맞딱 들이고 있고 새로운 도전을 받고 있었다. 우리들은 10년 만에 처음으로 선생님께 식사를 대접했다. 앞으로 좀 더 자주 찾아뵈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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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2100)

210051122A의 일기

 

대통령 오늘부로 전 세계 비닐, 플라스틱 제조는 정지됨을 선언합니다.”

엄마 이제 정말 끝이구나!”

 

대통령의 플라스틱제로 선언을 보면서 엄마가 말했다. 2-3년 전부터 마트 등의 상가에서 비닐과 플라스틱 포장재는 순차적으로 없어졌었기에 체감은 하고 있었지만 막상 뉴스를 통해 들으니 새삼 어색했다.

 

편의에 기대어 무분별하게 생산되던 플라스틱은 이제 다시는 제조되지 않는다. 수십 년간 쌓여온 플라스틱 쓰레기를 재활용하여 최소로 사용하기로 전세계가 동의한지 오래고, 실제 플라스틱 사용량을 사업, 일상 전반에서 줄여오기를 50년째다. 이제 정말 평생 버리지 않을류의 플라스틱 제품만이 재활용품으로 제작된다. 더이상, 어느 곳에서도 플라스틱을 새롭게 제조하지 않는다.

 

엄마와 장을 보러 나섰다. 장바구니는 3개 정도 챙겨 다닌다. 카트에 장바구니를 넣고 그 안에 살 것을 고르기 시작했다. 시장, 슈퍼, 마트 등 어느 곳에서도 고구마, 감자, 당근 등을 포장해놓은 비닐이 없다. 큰 판대 혹은 바구니, 상자 안에 식품들이 놓여 있고, 우리는 개별로 하나씩 골라 장바구니에 담는다. 모든 음료는 유리병 혹은 종이팩으로 구성되어 있다. 유리병은 플라스틱 통을 사용할 때보다 훨씬 무겁지만 플라스틱 통에 음료가 판매되지도 않거니와 2kg 이상 제품은 자가용이 없는 경우 모두 배송이 되기 때문에 괜찮다. 무엇보다 플라스틱 통을 몇 번 써본적이 없어서 익숙하다. 유리병을 깨끗이 씻어 주민센터에 주면 환급을 받을 수 있는데 그건 다 내 생활비로 쓴다. 10개에 음료 한잔 정도를 살 수 있으니 꽤 쏠쏠하다 하겠다.

 

계산대에서 개수 별, 그램 별로 정산을 하고, 배송주문을 해놓고 집으로 왔다. 오늘은 동네 식사모임 하는 날. 우리 집에서 모일 차례라 평소보다 많이 샀다. 집에 있던 야채 등을 꺼내는 와중에 k네가 왔다. 그는 오렌지를 담아온 바구니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k “오늘따라 탕수육을 먹고 싶지 뭐야. 만들어 먹는 것도 좋지만 탕수육도 같이 먹자고 시켜뒀어.”

띵동.

배달원 배달왔습니다!”

 

탕수육 배달이 왔다. 유리 그릇에 담긴 탕수육을 가져와 뚜껑을 여니 모락모락 김이 올라왔다.

 

맛있겠네..빨리 요리해야겠다!’

 

보통 배달음식은 사기그릇, 유리그릇, 재사용하는 플라스틱 그릇에 온다. 사기그릇, 유리그릇이 몸에 덜 해롭기 때문에 소비자들은 이를 선호하지만 배송하시는 분들이 운반할 때 무겁고 조심스러운 점이 있어, 여건에 따라 시행하는 것으로 정해졌다. 대신 유리, 사기그릇 등먼 사용하는 업체에는 면세 혜택이 있다.

 

심리학은 몰라도 프로이트의 무의식은 다들 들어본 것처럼 이제 EPR 제도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생산자 책임이 강화되어 모든 플라스틱 제조를 점차 줄여왔다. 2020년 즈음까지는 사람들이 비닐, 플라스틱 등을 적게 쓰려 해도 물건, 식품을 살 때마다 비닐 포장, 플라스틱 포장이 되어 있어 쓰레기 배출이 무한정 늘어날 수밖에 었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생산업체에서부터 엄격히 조정하고 있어 많이 정리가 되었다. 5년 단위로 플라스틱 제로 정책을 몇십 년 거쳐왔고, 플라스틱을 사용하면 고용주, 사업장에 불리한 법과 정책들이 매년 쏟아져 나왔다.

 

2020년대 사람들은 지금(2100)을 어떻게 상상할까? 지구 종말? 혹은 기술 개발을 통한 쓰레기 제로화? 글쎄, 아직 전 세계 곳곳에 쓰레기는 가득하고, 그 중 플라스틱 양도 엄청나다. 생산자뿐 아니라 소비자도 쓰레기를 줄일 책임이 크며 그렇게 배워왔다. 재활용 이전에 재사용을 하고, 재사용 이전에 소비 자체를 줄이는 식의 선택을 해나가는 것이 대세가 된지는 오래. 그렇게 살아가는 삶이 각광 받고 존중받는 시대는 와있다고 할 수 있겠다.

 

, 쓰레기 소각과 매립을 각 동마다 책임지고 하고있는 점도 다라진 점이겠다. 해당 동에서 배출된 쓰레기는 그 동에서 소각, 매립하는 책임이 부과되고 난 뒤 우리 동에서는 주민 회의를 통해 일회용 수저는 절대 소비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물티슈, 휴지 대신 물, 수건, 걸레를 사용하는 데도 힘쓰기로! 사실 어릴 때는 재사용, 재활용 가능한 제품을 구분하기가 어려웠는데 요즘은 식품을 제외한 거의 모든 물건이 재활용 가능 여부와 분리배출 방법 등을 안내하는 QR코드를 가지고 있어 정확히 분리 배출하고 있다. 아마 다들 그럴 것이다. 정부에서 운영하는 어플로 쓰레기 배출 정보를 바로 알 수 있는데 우리나라 모든 제품의 정보를 등록하고 있다하니 그 양이 참 궁금하다.

 

어쨋거나 오늘 이야기는 플라스틱에 대한 것이다. 현재 지구 곳곳에 남아있는 플라스틱 쓰레기는 1,100톤이다. 2100년 기준 전 세계 인구는 약 110억 명이고, 한명 당 1kg 정도를 책임져야 한다. 각 국가별로 남아있는 플라스틱 쓰레기는 자체 수거하고, 재활용, 소멸 방안을 지속적으로 연구하며, 발견한 방법을 하나씩 도입하고 있다. 개발된 장비 등은 전 세계가 공유한다.

 

바다 중에 생겨난 쓰레기섬도 70년째 나라별로 돌아가면서 책임지고 수거 중이다. 쓰레기섬 소멸과 각국의 플라스틱 쓰레기 소멸을 위한 인건비, 장비 비용 등은 환경오염에 책임이 있는 역사적 비중에 따라 국가별로 부담한다. 이에 대한 합의는 정말 어려웠지만, 전 세계적으로 더 이상의 성장자본이 불가능하다는 것, 환경보전을 하지 않으면 기회비용이 너무 커 살아갈 수가 없음을 깨달으면서 각 국가들이 자진 책임을 지기로 했다. 대부분 유럽과 미국이 책임을 지고 있지만 우리나라 부담도 작지 않다. 물과 공기 속에 남은 미세플라스틱 수거 방안도 계속 연구 중이라는데, 다양한 방법들이 시행되고 있다고 들었다.

 

고전 드라마 응답하라1988’에서 유리병에 담긴 우유가 배달되는 모습을 봤는데 고전 드라마에 우리의 일상이 있는 것이 신기했다. 우리도 음료, 술 등을 유리병에 담긴 것을 사니까. 플라스틱 음료 통은 이제 없다. 조금 다른 점은 텀블러 등에 수제 맥주 따르듯, 기름을 채워넣 넣듯 그램 단위로 제공받고 금액을 지불 할 수 있다는 것이다. , 이런 형태도 물론 예전에 있었을 것이다. 앞서 말했듯이 인구당 쓰레기 소각, 매립 양이 작은 동을 선별하여 면세 혜택을 부과하기 때문에 다들 텀블러는 필수로 사용한다. 인당 1kg 이내의 영구사용 플라스틱을 구매하여 쓸 수 있기 때문에 텀블러도 무한정 사지 못한다. 나는 도시락 용기를 플라스틱 제품을 쓰고 있다. 죽을 때까지 쓸거다.

 

동네 식사모임을 하면서 플라스틱 생성이 중단되었는데 지금 남아있는 플라스틱 쓰레기가 하루 빨리 정리되어 우리들의 평생생필품으로 들어오길 바란다는 이야기를 했다. 어떤 생필품을 플라스틱으로 가지고 싶은지 나누다 보니 어느덧 10. 오늘 하루도 즐거웠다. 굿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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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R 제도(확대된 생산자 책임 제도)

생산자에게 재활용 책임을 부과하는 제도.(출처: 그건 쓰레기가 아니라고요)

 

쓰레기섬

태평양 거대 쓰레기 지대(Great Pacific Garbage Patch), 혹은 쓰레기섬이라고도 불리는 이 지역은 전세계 바다에 버려진 부유성 쓰레기들이 원형순환해류와 바람의 영향을 받아 응집된 지역이다. 실제 섬의 형태는 찾아볼수 없고, 각종 잔해들과 쓰레기들의 밀도가 일정 이상 되는 구역을 싸잡아 부르는 지역이다. 미세 플라스틱 정도까지 분해된 경우가 많아 관련 연구자들이 해수를 채취해 검사하는 식으로 알아낸다. 주로 북서태평양 어장 동쪽에 집중적으로 분포되어 있는데, 90%가량이 썩지 않는 비닐과 플라스틱류로 이루어져 있다. 대서양에도 비슷한 이유로 대서양의 수많은 해초들이 모인 사르가소 해가 있는데, 대서양 연안도 쓰레기 투기나 유입이 이루어지기에 사르가소 해에도 쓰레기 섬이 자라는 중이라고 한다. 2010년대 후반경에 이루어진 연구에 따르면 한반도 면적의 7배인 155에 달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대한민국의 면적으로 따지면 15배에 달하는 면적이다.(출처: 나무위키)

 

제로웨이스트

제로 웨이스트(zero waste)는 모든 제품이 재사용될 수 있도록 장려하며 폐기물을 방지하는데 초점을 맞춘 원칙이다. 모든 제품, 포장 및 자재를 태우지 않고, 환경이나 인간의 건강을 위협할 수 있는 토지, 해양, 공기로 배출하지 않으며 책임 있는 생산, 소비, 재사용 및 회수를 통해 모든 자원을 보존하는 것.(출처: 나무위키)

 

환경단체 자료 추가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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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2071)

205051365I 이야기

 

 

I가 잡채 요리를 하고 있다. 벨이 울리고 I의 자녀들이 자신들의 자녀를 데리고 들어온다. I는 요리를 하다 말고 달려가 손주들을 안고 볼을 비빈다.

 

I 왔어 에구 우리 새끼들~”

 

손으로 잡채 면을 집어 입에 넣는 막내 손주와 그 옆에서 좀 더 컸다고 포크로 면을 돌려 먹는 손주. 그 옆에서 울컥하며 수저를 꽉 잡고 있는 I의 딸. 안쓰럽게 보고 아내 표정을 살피는 I의 사위. 옆에서 묵묵히 국을 먹고 물을 마시는 I의 남편 S가 있다.

 

I의 딸 언제 진단 받은거야? 같이 병원에 가지..”

I 너희 아빠가 같이 가줬는데 뭘. 엄마는 괜찮아.”

 

I의 딸은 주르륵 흐르는 눈물을 아이들에게 안보이려 무의식중으로 고개를 돌리는데 큰 손주가 의아하게 쳐다본다.

 

I의 사위 그럼 치료를 어떻게 해야..”

I 힐링마을에 가서 살 예정이야.”

I의 딸 힐링마을? 거기로 간다고?”

 

I가 고개를 끄덕이며 딸을 물끄러미 본다.

 

I의 딸 거리가 좀 멀 것 같은데...그냥 우리랑 같이..”

I 너희 아빠도 같이 갈거야. 예전부터 우리는 누가 아프면 거기가자고 했었어.”

I의 남편 아빠가 엄마랑 같이 갈거야.”

I 거기 가면 친구들도 많고, 놀거리도 많고. 또 안전하니까 아빠도 너희도 덜힘들고..많이 안 멀어. 시마다 있는데?”

 

I의 사위가 폰으로 우리도시 힐링마을을 검색한다.

 

I의 사위 저희 집에서 30분 정도 걸리네요..”

I의 딸 돈 때문에 그런거면 내가 좀 더 벌면..”

I 네가 몰라서 그런데 거기가 국가 지원이라 돈도 안들지만, 시설도, 생활방식도 굉장히 좋데. 엄마 의견 존중해줘.”

 

I의 손주 엄마 나 아이스크림~”

손주에게 아이스크림을 꺼내 주는 I는 방긋 웃어 보인다.

 

한 달 뒤 힐링마을로 간 II의 남편.

 

힐링마을은 각 도시마다 조성된 3-4개 동을 합친 크기의 마을로, 치매 환자와 그들의 가족이 함께 생활할 수 있도록 생활, 의료, 문화활동 등을 두루 지원해주는 곳이다. 의료와 주거, 식사에 있어서는 직계가족 1인까지 무료로 제공되어 치매환자와 가족이 생계벌이를 하지 못하는 어려움을 해소하고자 하였다. 처음에는 의료서비스와 주거를 중심으로 지원을 해주었지만 지금은 다양한 문화활동, 커뮤니티 활동, 더 나아가 종교활동, 돈벌이 활동 등을 할 수 있도록 마을 곳곳에서 사회복지사 등이 지원하고 있다.

 

II남편도 기존에 살던 집을 정리하고, 힐링마을 내 주택 한 곳에 정착하게 된다. 예전의 요양병원처럼 칸칸이 병실처럼 집이 있고 다 함께 집단 주거하는 형태가 아니라, 개별 주거공간을 제공한다. 가스 등 안전장치가 설치된 I네 주택에는 I의 딸이 어릴 때부터 자라온 과정이 고스란히 담긴 액자들이 가득하다. 물론 손주들 사진까지 다 있다.

 

아침이 되고, 일찍 눈을 뜬 I의 남편은 커피를 내려 마시며 I와 자신의 젊은 시절 앨범을 보고 있다. I가 일어나 방문을 열고 나오고, 남편 S는 냉장고에서 과일쥬스를 꺼내 아내에게 건넨다. 그때 벨이 울리고, S가 문을 열자 방문의사가 방긋 웃는다.

 

의사 안녕하세요 아버님! 진료 나왔습니다. 어머니 일어나셨나요?”

 

의사가 I와 이야기를 나누며 그날의 컨디션을 체크하고, 오늘 어떻게 보낼 것인지 이야기 나누며 유의사항을 안내하고 나간다. S도 안내받은 내용에 따라 아내의 약을 챙겨주고, 옷을 갈아입고 함께 외출한다. 집에서 2분 거리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린다. 정류장 이름은 힐링마을 45정류소이다. 힐링마을 내 버스는 종점에서 마을 밖으로 나가는 버스를 탈 수 있고, 다 힐링마을 내에서 달린다. 힐링마을 밖의 대중교통보다 속력이 훨씬 느리고 마을 밖으로 나갈 때는 동반자 확인을 해주는 직원이 따로 있다. 그때 버스가 도착하고 누군가 소리친다.

 

사회복지사 “I, S! 여기에요! 타세요!”

 

이날은 힐링마을 6070 피크닉이 있는 날이다. 힐링마을 사회복지사들의 지원으로 사람들은 동년배 친구들과 함께 댄스파티를 가지기도 하고, 동산을 걷고 하루종일 카드게임, 화투를 하기도 하며, 요리 만들기를 하기도 한다.

IS는 이제 온지 한 달 밖에 안되어 어색하긴 했지만, 또래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안면을 트면서 조금씩 편안해지고 있다. 오늘은 댄스를 배우는 날이라 서로 댄스를 배우며 춤을 추고, 웃고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I는 너무 웃겨서 눈물을 흘리는 남편 S를 보며 우울하기만 할 것 같았던 우리의 노후가 자신의 착각일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다함께 버스를 타고, 집집마다 내리는 버스. 예전이면 느리다고 속이 터졌을 건데 지금은 이렇게 가면서 여러 사람들과 자식이야기, 살아온 이야기 나누는 게 재미있어서 좀 더 천천히 갔으면 하는 마음에 버스기사를 보고 야속해 하기도 했다. 아쉬운 마음으로 인사하고 내린 IS가 집에 들어가자 I의 딸과 그 가족들이 달려왔다. 손주들의 깜짝 방문에 놀랐다가 반가워하는 I, S. 딸과 사위가 준비한 어설픈 음식을 함께 먹으면서 S가 그날 있었던 댄스파티 이야기를 하느라 정신 없는 모습을 보면서 I는 자꾸 웃음이 났다.

 

I의 딸 엄마, 여기 한달되었는데 어떤 것 같아? 별로면 이야기해도 돼.”

I 진짜로 솔직히 말하면.”

I의 딸과 사위 “..?”

I 좋아. 편안하고. 좀 더 안전해진 것 같아.”

 

안도의 웃음을 짓는 가족들. 해가 지고, 마을 곳곳에 가로등이 켜지고, 혹시 밤에 길을 잃고 밖을 돌아다니는 사람은 없는지 살펴보는 공무원들이 야간 순찰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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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마성의기쁨]을 보았다. 주인공은 사고로 신데렐라증후군. 자고 일어나면 기억을 잃는 병을 앓으면서 치매환자들의 생활을 위한 공간 [힐링마을]을 만들려고 애쓴다. 그 내용을 바탕으로 상상해본 에피소드이다. 2021년 치매환자들의 삶에 대해서 정부에서 관심을 가진지는 꽤 되어 보이고, 치매안심마을 등의 호칭을 붙이며 여러 정책을 펼치기 시작하고 있다.

 

(정책 내용 추가예정)

 

치매의 상황은 아니지만 일본 베델의 집은 정신의 병이 있는 사람들이 자립적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들어간 작은 마을이다. 이들은 같은 마을에서 함께 주거하고, 스스로 돈을 벌며, 식사를 하고 여가를 즐기며 스스로가 만족하는 생활을 함께 만들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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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2071)

207151413J 관찰기

 

일어나, 이제 학교 가야지?”

쫌만 더자공.. 오늘 오후 수업이거든요?”

그래? 그럼 너가 알아서 가렴. 엄마 나간다!”

 

햇살이 창틀 유리 무늬 사이사이로 들어온다. J는 눈부신 햇살을 손바닥에 담으며 다시 잠에 빠진다. 10, 11, 12. ♪󰁠

알람소리가 울리고 눈썹을 치켜올리는 힘으로 눈꺼풀을 올린 J는 팔다리를 쭈욱 뻗는다.

 

~”

 

벌떡 일어난 그는 세수를 하고, 집 베란다에서 토마토를 한주먹 정도 뜯어와 냉장고에 있는 오이 등 야채와 함께 그릇에 부어 자체제작달달소스라고 적힌 소스를 뿌려 포크로 찍어 먹는다. 방으로 왔다갔다 하며 헌법책을 가방에 넣고, 옷을 갈아입으며 밥을 먹고, 맹물로 설거지를 한 뒤 모자를 쓰고 나가는 J.

 

103305호에서 나온 J는 폰으로 스케쥴표를 확인 한 후 104507호로 가서 벨을 누른다.

 

띵동.

J에요!”

K가 문을 열어준다.

아깝다, 벌금 거둘 수 있었는데!”

 

K16, 104507호에 사는 사람이다. 그 집에 16A, 15B, 14C가 먼저 와있었다. J13살이다.

 

J 그건 안되지.”

K 진행자가 늦나 했는데 안 늦었네?”

J , 시작해볼까? 오늘은 51조에서 55조까지 같이 읽는 날이죠?”

 

사람들은 돌아가면서 헌법 51, 52, 53, 54, 55조를 설명했다. A51조를 설명하면 B가 보충 설명을 했고, B52조를 설명하면 K가 자신이 본책 이야기를 통해 판례를 설명했다. 각자는 서로 다른 책을 가지고 있었고, 책을 가지고 있지 않은 이도 있었다. 휴대폰이나 태블릿을 가지고 자료를 조사해서 바로 이야기를 나누고, 학습한 내용을 온라인 창구에 게시하며 정리하였다.

 

1시에 시작한 학습모임은 3시에 끝이 났고, J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K 집에서 나온다.

 

C 요리 수업 요새 뭐해?”

J 요리? 요새 비건요리 개발하고 있지. 나중에 우리집에 와. 해줄게.”

C 채소만 먹으라고?”

J 깜짝 놀랄거다. 비밀 소스가 있거든.”

B 나도 다음 기수에 거기 들어가봐야겠다. 언제 다음 기수 모으냐?”

J .. 다음 달이면 요 수업은 끝나. 다음달 초에 다음기수 모집글 올라갈거니까 연결학교사이트 들어가봐.”

B 오케이.”

A 야 나는 저리로 간다. 오늘 버스킹 올꺼지?”

J, B, C 오케이!”

 

기타를 매고 온 A는 다른 일행들과 다른 방향으로 달려간다.

 

J “A 기타스터디 오래하네? 몇 번째 공연이지?”

B 지금이 아마...5섯번째?”

C “1년 반은 된 것 같은데?”

 

J가 폰으로 스케쥴표를 본다.

 

J 동촌유원지 8시네. 요리 갔다가 가면 되겠다. 야 밥 조금씩 먹고와. 내가 만든거 싸갈게!”

 

B, C ‘예스라는 입모양을 하며 손주먹을 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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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71. 2021년에 존재하던 학교라는 건물은 이제 더 이상 학교로 불리지 않는다. 대부분 주민커뮤니티센터로 운영되고 있거나 공공도서관으로 운영되고 있어서 8세부터 19세까지 사람들도 들르지만 그 외 7세 이하, 20세 이상의 사람도 누구나 들르는 그런 공간이 되었다.

 

그럼 학교는 어디있느냐고? 학교를 교육이 이루어지는 공간이라고 정의한다면 2071년의 학교는 여기저기에 있다고 하겠다. 말 그대로 여기저기다. J의 집에 운영되는 교육이 있고, K의 집에서 운영되는 교육이 있고, S의 작업실에서 운영되는 교육이 있으며, 길거리, 공원, 박물관, 공연장 등에서 진행되는 교육도 있다.

 

앞서 살펴본 J와 친구들의 스터디를 예시로 살펴보면 2021년과 큰 차이 몇가지가 있다. 첫째는 교사라고 지칭하는 이가 없다는 것이다. 이 말인즉, 누구나 가르치고 누구나 배우는 구조라는 말이다. 교사 대신 진행자라는 이름의 운영자가 있어 모임이 운영된다. 진행자는 고정될 수도 있지만 순환하며 돌아가도 된다.

 

둘째, 학년제가 아니다. 여러 연령의 사람들이 섞여서 함께 공부를 한다. , 누나, 언니, 오빠 등으로 나이 많은 이를 지칭하기도 하고, 이름으로 통일해서 부르고 존대를 하기도 하며, 호칭에 대한 것은 그 스터디마다 참여자들이 의견을 나누어 결정하기 때문에 딱히 하나로 소개하기는 뭣하다.

 

셋째는 아마도 가장 중요한 축이지 않을까 싶은데 바로 원하는 교육을 선택하여 만들고, 교육 내용과 방식 모두를 서로가 의논하여 결정한다는 것이다. ‘자치라는 단어로 표현할 수도 있으나 이제는 이게 너무나 당연한 무언가가 되어 굳이 자치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는 것 같기도 하다. 교육의 주인공이 원하는 교육을 직접 선택하고, 홍보하여 진행한다. 교육청은 사람들의 이런 욕구를 공유해주고, 연결해주며, 공간 안내, 스터디 기록물 보관 공유 등의 역할을 한다. 결론은 공통된 의무교육이 없다. 추천되는 수업주제 몇가지가 있지만 선택은 아이들 자율이다.

 

그럼 대학은 어떻게 하고 취업은 어떻게 하느냐고?

 

나중에 이야기하겠지만 취업 준비를 위해서 존재하던 대학은 2030년즈음 대거 사라지기 시작했고, 현재는 순수연구를 위해서가 아니면 대학의 효용가치가 없다는 데 다들 동의한 분위기이다. 그러니까 대학은 거의 가지 않는다. 이 부분은 대학 이야기할 때 더 하도록 하자.

 

그럼 취업하기 어렵지 않으냐고? 지금은 2071년이다. 요즘 필요한 능력은 거의 대부분 없던 것을 만들어내거나, 감정을 다루는 일,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 사회변화에 적응하고 예측하는 능력같은 건데 그건 어느 교과를 배운다고 해서 만들어지고, 어느 교과를 배우면 만들어지지 않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 선택하고, 배우고, 스스로의 생활과 삶을 책임져가는 이 과정 하나하나가 현 시대를 살아갈 수 있는 가장 큰 기반이 될 것이다.

 

2030년즈음 대학이 대거 사라지고, 그때부터 2040년까지 공교육체제가 서서히 해체되면서 사교육도 붕괴되어 갔다. 대규모 국민 토론회가 몇십년에 걸쳐 진행되면서 결국 의무교육의 연결을 끊기로 하고, 30여년 간 지금의 체제를 준비, 진행해왔다. 정부 뿐 아니라 모든 시민들이 준비하고 경험해가면서 만들어온 방식이다.

 

수업이라는 예전 용어 대신 오픈스페이스’ ‘열린공간이라는 단어를 쓴다. 동네마다 공간을 오픈하고 자체 공부를 하게 하면서 생기는 많은 문제점들을 겪으며 최악의 문제, 정부가 책임지고 관리해주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기준을 정리해 나갔다. 예를 들면, 열린 공간으로 신청하는 곳에 시찰을 가서 공간이 안전장비를 갖추고 있는 공간인지, 공간 운영자 혹은 집에 거주하는 이들이 범죄이력은 없는지 등을 점검하고 규제하는 것이 있겠다. 활동 내용 중 안전상의 위험이 있어 보이는 것은 교육청 소속 교사들이 함께 동행하며 사전조사와 문제 예방을 하는 작업을 하기도 한다.

 

2071년의 교육은 서로에게 배움이라는 의미로 가고 있고, 익숙해지고 있다. 익숙해지면서 새삼 서로가 느끼고 있는 것은 우리에게 생각할 기회와 이끌어갈 권리와 책임이 있다면 우리는 충분히 무언가를 고민하고 생각해서 무언가를 배울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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