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거(2049)

204951823M 이야기

 

M이 다급한 발자국 소리를 내며 지하로 내려간다. 아슬하게 지하철을 탄 M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귀에 꽂힌 이어폰을 눌러 음악을 듣는다. 그때 메시지가 와서 폰을 누르면 문자와 함께 메시지 내용이 이어폰을 통해 들린다. Q의 메시지다.

 

AI 올 때 마늘 좀 사와. 마늘 깜박했다!

 

M은 시계를 잠시 본다. 640. 퇴근하고 가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는데 동료들이랑 상사 뒷담화를 까다가 시간을 놓쳐 버렸다.

 

M 그래도 늦지는 않겠네.

 

772역에 지하철이 멈추고 M은 빠른 걸음으로 걸어 마늘을 구매한 뒤 그 곳으로 향한다. M과 동네 친구들이 자신들의 집보다 더 오래 머무는 곳. 자는 거 빼고 먹고 놀고 보고 다 되는 곳. 아 아주 가끔은 단체 캠핑식으로 자기도 하지만. 772 마을에 사는 누구나 오갈 수 있는 동네 마을 공유공간이다.

 

동네 마을 공유공간은 20-30년 전에도 존재했고, 각 동네마다 운영하는 다양한 형태들이 있어왔다. 협동조합형 가게(식료품점 혹은 카페 등)가 있어 여기서 같이 놀기도 하고 독서모임도 하고, 동네 플리마켓 등 파티를 여는 등의 활동을 했다. 혹은 공유부엌이라고 동네 사람들과 정기적으로 모여 같이 요리를 해서 식사를 같이 먹는 공간들도 늘어나기 시작했다. 청년들의 자유공간, 청소년들의 자유공간 등도 계속해서 생겨나고 만들어졌고, 그 운영방식은 더 다양해져 갔다.

 

참여자들의 자유로운 이용이 가장 중요했기에 시에서 운영하는 공간은 지금은 운영시간을 24시간 오픈제로 바뀐 경우가 대다수다. 그에 따른 인건비를 들이고 모두 정부, 지자체에서 운영할 수는 없기에 신뢰를 바탕으로 주민들이 자체 운영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M이 아기일 때만 해도 공간을 더럽게 쓴다거나, 불을 안끄고 간다거나 물건을 파손시키는 등의 문제들이 잦았지만 주민 회의로 자체 관리하고 운영규칙을 만들어 진행해오길 10년이 넘어가니 차차 이런 경우가 많이 줄었다. 동네 사람들이 서로를 알고 지낸지 그만큼 오래되면서 함부로 행동하여 신뢰를 잃지 않으려는 분위기가 형성된 듯하다.

 

지자체 운영공간 외에도 작은서점, 작은카페, 작은가게, 개개인의 집에서 공유공간을 운영하는 경우는 많다. 지금 M이 가는 곳은 Q네 집이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QNTAB의 공동주거 주택이다. M은 그들과 옆옆집에 살고있는 독거인이다. M은 혼자 살기를 지향하지만 혼자이고 싶지는 않은 사람으로 혼자 있는 집을 매우 사랑하고, 다 같이 사는 Q네 집을 즐겨간다.

 

M 헤이~

T 왔는가?

Q 마늘?

M 여기.

 

T는 언제나처럼 친구들을 맞이하고, 노래를 부르고 있었으며, AB는 마당에서 기르는 채소들로 샐러드, 무침 나물을 만들고 있었다. Q는 두루치기를 만들려고 고기를 양념에 절여두고 있었는데 마침 와준 M의 마늘을 씻어 갈아 넣는다. NM은 마당에 놓은 넓고 오래도니 나무 테이블을 닦고, 수저를 놓는다. 오늘은 이들의 집에서 영화를 보기로 해서 T는 전기선을 밖으로 빼어 노트북을 배치한다. 180cm 자기 키만큼 하얀 스크린을 올린다. 그러다 어느새 해가 떨어지고, 태양열 조명이 켜지고, 음식들이 상에 올려진다. M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잡채이고, 다들 자리에 앉아 영상이 틀어지자 M은 잡채를 홀짝홀짝 마시기 시작한다.

 

M 너희 잡채는 왜 이렇게 더 맛있냐?

A (신나서 M을 쳐다보며)그치?

B 영화나 봐.

M 너희는 영화를 보거라, 나는 잡채를 더 퍼올테니..

 

M은 주방에 가서 프라이팬에 남은 잡채를 몽땅 덜으며 흐뭇한 미소를 짓는다.

 

2049년의 공동주거는 여러 형태가 있는데 그 중 하나는 시, 지자체에서 4-7명이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주거 형태의 공동주택이다. 2030년즈음부터 주택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한가지 방안으로 공동주거주택을 건설하기 시작했고, 연령, 성정체성, 생활패턴 등을 고려하여 원하는 조건에 따라 공동주거인을 연결해주는 정책을 펼쳤다. 내가 이성애자 여성, 30, 아침에 일어나고 밤에 자는 형일 경우, 내 정보를 입력하고, 동시에 내가 원하는 공동주거인의 조건을 입력한다. 이성애자 여성과 공동주거하고 싶을 경우 그렇게, 성정체성은 상관없이 여성이면 그렇게 표시를 하고 그에 맞게 사람들을 묶어 미팅을 가지고 논의해볼 수 있도록 행정복지센터 공무원들이 진행하고 있다.

 

다른 하나는 원하는 이들끼리 모여 공동출자를 하여 협동조합식으로 집을 구해 함께 살아가는 것이다. 공공이냐 민간이냐의 차이인데 주거에 대한 불안전함을 없애고자 장기간 정책이 시행되고 있어 이제 개인소유 주택이 있는 이들은 30%, 공동출자로 집을 구한 경우는 25%, 국가 지자체 지원 주택(개별주택이든 공동주거주택이든) 거주인은 45%에 달한다.

 

실제로 Q40, 이성애자 남, 도배 일을 하며, A25세 여, 양성애자, 작가다. B31세 남, 동성애자, 요리사이고, T28세 여, 이성애자, 청소부이다. M은 23세 여, 이성애자 디자이너이다. 대구시를 통해 만난 이들은 여러차례 만남을 통해 룸메이트들을 찾았고, 성지향에 대해서는 프리하고, 나이는 20-45세 사이였으면 한다는 기준을 가진 이들의 조합이었다. 한두 명은 생활을 해보다 나갔지만 지금 멤버들은 함께 살아가고 있다. M은 같이 살다 나온 이 중 한명 인데 함께 살아가는 데서 겪어야 하는 조율 등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공간을 가지고 싶어서 독립했다. 그러나 이들의 분위기, 공간이 주는 매력을 끊지 못해 근처로 집을 구하고 거의 매일 저녁을 함께 보내고 간다. M이 잡채를 다 먹고 생야채를 갈아넣은 쥬스를 홀짝 마신다.

 

T M, 근데 너 맨날 이렇게 올거면 그냥 다시 들어와~!

M 어 싫어.

T 너 지금 거의 같이 사는거야 알지?

M 아냐. 난 혼자 살고 싶어.

Q 냅둬라, 들어올 때 되면 들어오겠지.

M 우리집도 우리집, 여기 너희들 집도 우리집인거야.

T 누구 마음대로?

B (화면에서 눈을 못떼며)시끄러 조용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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