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그런 생각을 해봐. 전기자동차는 이미 나왔고, AI 관련 사업은 계속해서 진행되고 4차 산업 이야기를 많이 하지만 그것을 내가 얼마나 사용하고 누리며 살 수 있을까에 대한 것 말이야. 기술은 발전하는데 그것을 누리기 위한 비용은 높은 상태에서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 생각해. 자본을 모으기 위해 개발을 하고 있는 기업이 돈이 없는 사람을 위한 대책을 세우지는 않을꺼니까. 돈이 많은 사람들이 누릴 수 있는 것들은 갈수록 늘어나겠지. 그러다 자본가들은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될꺼야. 돈이 많은 사람들이 돈을 많이 내고 이용하게 하여 돈을 많이 벌 것인지, 상품의 가격을 낮춰 돈이 많지 않지만 소비활동을 하는 다수의 시민들에게 상품을 팔아 돈을 많이 벌 것인지 말이야. 결국엔 가격을 낮춰서 다수에게 판매하지만 거기에도 한계가 있지 않을까. 사람들은 돈이 없어서 계속해서 소비하지는 않거든. 어쨌거나 저쨌거나 돈이 어중간하게 있는 소규모의 기업들, 개인들은 갈수록 돈을 벌기가 어려워지겠지.

 

Photo by  Chris Tran  on  Unsplash

식민지를 만들어 수탈하고, 전쟁을 일으켜 전쟁물품을 팔아 돈을 벌던 제국주의 국가들은 전쟁이 끝나면서 자본주의의 한계에 계속해서 다다를꺼야. 생산은 계속되고, 생산품은 계속해서 늘어나고 발전하는데 그 것을 사줄 사람, 사줄 나라가 없어지는 상황 말이야. 그러면 기존에 있던 일자리는 더욱 줄어들겠지.

 

어떤 미래를 살게 될까에 대해 생각하다 보면 내가 자본주의에 대해 너무 무관심했다는 생각이 들어. 자본주의라고 하면 돈을 벌고 싶은 방식대로 시도할 수 있는 자유가 많아진 상태라는 정도로만 이해했어. 여러 부작용이 있지만 그 것을 내가 이제 와서 막을 수도 없는 일이고, 내 생에서의 사회는 지금껏 계속 자본주의였어서 다른 상황이 닥칠 수 있다거나 그 것이 어떤 변화를 겪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던 것 같아.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시대가 자본주의이고, 이것의 한계가 드러나기 시작하면서 마르크스주의, 공산당선언을 공부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데. 헌법 읽기 모임에서도 공산당선언을 읽기로 했어. 강의해주시는 교수님은 공산주의가 실현되지 못한 이유를 살펴보면 자본주의에 대해 더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 했어. 무작정 듣고 메모하고 책을 깨작깨작 읽어보는 것부터 하고 있어. 나의 2069년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2019년의 나는 세상에 대해 거의 백지의 개념을 가지고 있다고 보면 돼. 부디 하루하루 좀 더 현명해지기를..

 

프롤레타리아라는 개념부터 말해볼게. 이 편지는 내가 이해하는 여기를 정리해서 알려주기 위함이니 이미 알고 있다면 양해 부탁해. ‘얘는 이렇게 모르는게 많구나하고 이해해줘. 다음 백과사전을 찾아봤어. 프롤레타리아는 자신의 노동으로 살아가는 사람, 생산 수단을 갖고 있지 않아서 살기 위해 부득이 자신의 노동력을 판매해야 하는 현대 임금 노동자. 요즘 말로 바꾸자면 나를 포함한 수많은 시민들이라 할 수 있겠지. 월세 받을 건물이 있다거나 뭐 그런 상황이 아닌 요즈음 대다수의 사람들이 프롤레타리아 인거야. 19세기에는 피지배 계급, 하위 계급이라는 의미에서 무산계급이라 부르기도 했데.

 

스터디에서 살펴본 것은 공산당선언에서 마르크스는 프롤레타리아의 혁명이 성공할 것이라고 말했는데 왜 노조 활동은 연합이 되지 않고 사회주의의 불꽃이 사그라들었을까에 대한 거였어. 왜 노동자 계급의 혁명은 성공하지 못했을까? 지금도 우리는 노조 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다수를 차지하는 기업을 보기는 어려워. 여러 가지 이유에 대한 관점들을 들었는데 나는 이 부분에 특히 동의해.

 

노동자계급의 정체성이 통일되지 않아서.

 

노동자계급 중에서도 돈을 벌어 자본을 소유하여 상황이 나아지는 경우가 생기지. 돈이 더 있는 자와 더 없는 자가 생겨. 어느 대학을 나왔느냐, 대학을 나왔느냐 아니냐에 따라 직급이 달라졌었고. 남자냐 여자냐에 따라서 일의 종류와 기회가 달라졌었지. 여성의 직장진출이 늦거나 경력단절이 문제가 되기도 했고. 외국인이냐 내국인이냐로 편을 갈라 대우를 달리했지. 그리고 이들은 모두.. 우리 모두는 돈을 더 벌고 싶어 하지. 가능하면 일을 덜하거나 하지 않고 돈을 더 많이 벌려고 말이야. 그러니 내가 예전의 부르주아가 되려 하지 프롤레타리아에서 혁명을 일으키려 하진 않는 것 아닐까? 한 팀으로 움직이기엔 서로 간에 해결해야 할 갈등이 많아서이거나. ‘우리라고 생각하지는 않는 것 같아.

 

일제강점기나 신분제도 등과 같이 우리가 우리를 생각하고, 함께 모여 항의할 것이 명확했던 시대를 본다면 좀 더 이해가 쉬울까 싶네. 일제강점기는 일본으로부터 벗어나 독립을 원하는 사람들로 뭉칠 수 있었어. 독립이 되냐 안되냐로 성취 여부가 분명했지. 신분제도의 경우도 신분제도 폐지를 원하는 사람들로 묶여서 혁명운동을 했지. 농민들, 노비들. 자신들의 위치에서 겪는 억울함, 부당함에 대해 이해하고 벗어나기 위해 계속해서 움직였지. 어느 정도까지의 폐지인지는 다를 수 있었지만 말이야. 이 두 가지 상황에서 우리가 모여서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사회가 바뀌기 어려웠지. 그리고 결국 목표하던 바가 이루어졌고 우리의 모임은 더 이상 존재할 필요성이 없어 흩어지게 되었지. 자본주의는 다른 문제야. 내가 자본을 가지면 우리에서 갑자기 벗어나지. ‘우리가 바꾸고자 하는 바를 명확히 무엇이다 말하기에는 잘 모르고 살기에 급급해서 인 것 같기도 하고 우리 안의 문제들이 많아 우리는 그 안에서 편을 가르지.

 

스터디에서 공산당선언의 내용이 실현되지 않은 이유에 대해 프롤레타리아의 의식, 가치관과 같은 질적 성장이 양적 성장에 비해 너무 늦었다는 말이 나왔어. 노동자 계급에 기반을 둔 정당(사회민주당:SPD)이 생겨나면서 노동자들을 위한 정책이 생겨나고 이들이 모여서 연합할 일이 줄어들었다는 거야. 관심도 줄어들고. 자신의 일이라는 생각도 줄어들고. 나도 그래. 기업의 노조파업을 보면 내 일이 될 수도 있다 생각해보지만 내 일처럼 나서지는 않지. 정당은 아니지만 관련 시민단체가, 언론이, 법이 해결해야지라는 생각을 하지.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있을텐데도 불구하고 다른 기관, 국가만이 해야 하는 것이라고 바라보기만 하는 거야. 나는 계속해서 흩어지는 시민 중의 하나가 되고, 생각이 사라지는 거지. 자발성이라는 게 없어져. 우리라는 생각도.

 

처음의 고민으로 돌아가 보자. 다른 나라 사례를 들어 볼까? 얼마 전 대만탐방을 다녀온 친구가 있어. 그가 들려준 이야기를 해볼게. 대만은 지금 임금의 평균 32%를 방값에 들이고 있데. 임금은 낮고 월세는 갈수록 높아지는 거야. 집을 가진 사람들은 세를 높이고, 집이 없는 사람들은 집값이 너무 비싸 자신의 집을 구하지 못하지. 빈집은 늘고, 집이 없고 갈 곳 없는 청년들도 늘어나는 상황. 2차 세계대전 이후 경제 발전이 필요했고, 대만은 부동산투기에 제한을 크게 두지 않았어. 그래서 지금과 같은 상황이 닥친 거지. 내 주변에도 돈을 좀 버는 지인들은 집을 사는 것부터 생각을 하고, 집이 있는 사람은 다른 집을 구해 수입원을 얻으려 해. 돈을 많이 벌 일을 하지 않을 것이라 판단한 나는 월세로 살아가는 삶에 대해 고민해보고 있어. 그런데 월세가 갈수록 높아질 것 같아. 그래서 돈이 많이 생기면 집을 구해야겠다 싶지.

 

19세기에 여러 사상가들은 사회를 어떻게 바라봤을까. 베른슈타인이란 자는 자본주의의 공황이 극복될 것이니 자본주의 안에서 가능한 많은 대안을 찾아내야 한다고 생각했데. 나도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아. 딱히 자본주의가 망하지는 않을 것 같았거든. 카를 카우츠키는 자본주의가 주기적인 공황을 피할 수 없고, 실질 임금이 상승해도 상대적 빈곤은 심해질 수 있다했어. 자본주의는 저절로 망하게 될 것이라고. 중간계급이 나타나도 결국 프롤레타리아가 될 것이라고. 최근의 나는 자본주의가 지금의 모습에서 더 최악의 상황이 늘어나는 쪽으로 갈 것이라 생각해. 로자 룩셈부르크라는 사람은 무한 생산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자본주의는 붕괴할 것이라며 세계가 전부 자본주의화 된다는 것은 자본주의의 붕괴와 사회주의가 다가옴을 뜻한다 봤어. 자본주의가 붕괴된다고 해서 사회주의가 일어나는 것은 아니니 사회주의 혁명이 필요하다고. 가만히 있으면 노동자가 제일 먼저 망하고, 세계는 야만의 상태가 될 것이라 했데. 개혁과 혁명은 보완적으로 이루어 져야 한다고. 레닌은 노동운동에 조직성, 의식이 필요하고 그래서 정당이 필요하다고 봤어. 특정당이 생겨나 개혁을 한다는 거지.

 

나는 앞으로 다가올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준비해야 할지에 대한 정리가 필요해. 그래서 사상가들이 말했던 대안을 살펴봤어. 정당이 중심으로 움직여야 한다고 말하는 레닌, 카를카우츠키 보다는 스터디 내에서 이상적이라 비판 받았던 로자 룩셈부르크의 대안에 더 동의해. 진정한 민주주의 발전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고. 로자는 대중파업과 같이 행동, 경험을 통해 노동자 스스로 가지는 자발성이 필요하다고 봤어. 언론과 집회의 무제한적 자유, 자유로운 공공여론의 보장이 필수라고 했지. 내 생각에도 스스로 일하지 않고서는 살 수 없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우리들이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하기 위해 자유롭게 활동 하는 거야. 노조활동이든, 집회활동이든, 나의 의사를 표현해나가고 행동을 바꿔 나가는 거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래도 세상은 망할 것 같아. 그리고 그때 가서는 대안을 모색하기에는 너무 멀리 간 것은 아닐지 불안해. 대안이 필요한데 그것을 국가가 알아서 할 것이라고만 생각하거나 특정 개혁 그룹들이 해나갈 것이라고 믿고 있을 수는 없어. 그 것만으로 대안이 마련되더라도 그것이 나와 다수의 시민들이 원하던 방향일 것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고. 결론적으로 나는 대안적 삶을 위해 고민하고 공부하고 준비해나야겠어.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라는 것에 대해서는 해보면서 정해야겠지만.. 내가 스스로 내 삶의 방식, 내 시야를 깨나가야 한다는 건 분명해. 나는 자본주의라는 틀에 살고 있지만 그 틀이 항상 이 모습 그대로는 아닐 것이라 생각해. 그 변화에 내가 합류해야 할 때도 있고 그 변화를 내가 만들어 갈 때도 있는거지. 사회주의는 아니지만 자본에 대한 이기심에서 고립되지 않기 위해 여러 가지 것들에 대한 공유와 같은 대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어. 우리가 어떤 것을 목표로 모여야 할지 고민해봐야겠지만. 적다 보니 조금은 정리가 된다.

 

다음엔 얼마 전 본 영화 이야기를 할까해. 그럼 잘 지내!

고전소설을 읽는 독서모임을 하고 있어. 

 

거기에 미소가 귀여운 여자분이 한명 있지.

 

모임이 끝날 무렵 그 친구는 이번주에 길을 가다 안개꽃 한 묶음을 샀데.

 

그리고 남자친구에게 선물을 했다고.

 

특별한 날이 아닌 어느 날에. 

 

Photo by  boram Jeong  on  Unsplash

 

나는 처음에 잘 못알아듣고 그 친구가 꽃을 받은 줄 알았어.

 

좋겠다는 말을 건넸는데 그 말을 들을 당사자는 그 친구의 남자친구였지.

 

남자친구는 하루 종일 꽃을 받아 좋다고 말했데.

 

산책 길에, 퇴근 길에 무심코 꽃을 사서 서로에게 건넬 수 있는 문화.

 

다른 언니는 유럽에서 꽃을 든 노인들을 보았다며 꽃을 사는 게 일상인 그런 문화가 부럽다 했어.

 

나는 사실 올해 엄마 생일 날 아빠와 함께 꽃다발을 사서 아빠가 전해드리게 했어.

 

작년에도 시도하려 했지만 저의 실수로 꽃을 준비하지 못했어. 

 

이번 생일에는 꼭 꽃을 사자는 저의 제안에 며칠 뒤 무뚝뚝한 아빠는 나에게 말했어.

 

장미꽃 30송이(송이수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네요)의 꽃말이 맘에 든다며 

 

빨간색 장미꽃 30송이를 사야겠다고. 집 근처 꽃집에 알아봐달라고.

 

결국 꽃집 추천대로 여러 꽃을 섞어 요즘 유행한다는 꽃다발을 샀지만.

 

아빠는 꽃값에 비해 꽃이 너무 적다며 투덜댔지만 꽃다발을 의식하며 엄마가 있는 곳으로 함께 갔어.

 

물론 엄마는 돈이 아깝다며 다른거 사주지라고 핀잔을 주셨지만

 

꽃다발과 아빠의 편지는 엄마의 SNS에 바로 기록되었어.

 

낭만이 없던 우리들에게 그 것은 낯설지만 그래서 더욱 화사해.

 

낭만이 필요한 우리들의 소소한 행복들은 미래에 더 자주 있을까?

 

Photo by  Leonardo Wong  on  Unsplash

급하게 먹으면 몸에 좋지 않다.

 

체하기도 한다.

 

세상이 급하게 변하면 혼란을 겪고 오히려 체하기도 할 것 같다. 

 

어쩌면 우리 세상은 수없이 많은 분야에서 발전하지만

 

그 수없는 발전을 따라 잡을 여건이 안될지 모르겠다.

 

평범한 우리들에게는 특히나 버겁지 않을까.

 

못 갈 곳이 없고,

 

상상하던 많은 것들을 실제로 해볼 수 있지만.

 

우리의 삶은 고립되고 마음은 가난하다.

 

요즘 그런 생각을 해본다. 

 

우리의 삶은 과거로 회귀해야만 안전하지 않을까 하고.

 

Photo by  Anita Jankovic  on  Unsplash

 

네 것과 내 것이 분명한 이 곳에서 

 

너의 것과 나의 것의 경계가 모호한 공동의 것들을 추구해야 하지 않을까.

 

나와 너의 것을 나누고 공유해가야 하지 않을까.

 

체하지 않으려면 천천히 먹고, 

 

내가 잘 소화시키던 음식들을 먹어야 할 텐데.

 

소화 능력이 떨어질수록 적게 먹어야 하는데.

 

많은 것을 가질 수 있는 기회는 열렸지만,

 

우리는 많은 것을 포기하는 준비를 해야 하지 않을까.

 

그것을 무소유라 말할 수 있을는지.

 

그것을 공동체라 말할 수 있을는지.

길가다 현수막 하나를 봤어.

실패 박람회라고 적혀 있었지.

대구에서 실패를 소재로 한 활동들이 진행되는 행사였는데, 시민들이 학업, 취업, 인간관계, 연애 등 분야를 선택하여 실패에 대해 이야기하는 숙의 토론이 있었어. 실패를 소재로 한 전시, 버스킹 공연이 있어 시내를 돌아다니며 내용들을 볼 수 있었지. 실패에 대해 이야기 할 수 있는 부스, 무대도 있었고, 실패의 경험을 나눌 수 있는 청년 네트워크 활동도 진행됐어. 여러모로 궁금할 수밖에 없었어. 대구에서 이런 걸 하는구나 감회가 새롭기도 했구.

 

나는 실패한 청년들의 네트워크 파티에 참석했어. 가는 길에 상상해봤지. 무슨 이야기가 나올까? 내가 가서 이야기 나눌 거리는 있을까? 나도 크고 작은 실패를 경험하고 있지만 훨씬 더 역동적인 도전을 해가는 사람들에 비하기엔 꽤나 주관적인 실패가 아닐까 싶었어. 하지만 이 네트워크의 취지 자체가 자신의 삶과 타인의 삶을 응원하기 위함일테니 실패의 경중을 따질 필요는 없겠다 싶었지.

 

미묘한 긴장감과 함께 들어간 행사장 왼편에는 발표자들이 있었어. 첫 발표자는 여러 사업을 도전하고 실패하기를 반복해왔고, 지금도 도전 중이었어. 주도적인 삶을 살아간다는 느낌? 그리고 두 번째 발표자가 무대 위에 올랐어. 그는 선천적인 병이 있는데 성장과정에서 여러 사고들을 겪어 더 아픈 곳이 많아졌데. 건강이 좋지 않은 그 청년은 그럼에도 좋아하는 일들을 하며 잘 살아가고 있다고 했어.

 

다음 발표자 둘은 공교롭게도 우울증을 앓고 공황장애 진단을 받은 상황이었어. 공황장애나 우울증을 앓는 청년들이 많다는 건 알고 있었어. 요즘 유행하는 책을 봐도 개인의 감정이나 마음 치유를 위한 것들이 굉장히 많거든. 그래도 이런 자리에서 실감하게 될 줄은 몰랐네. 두 청년은 관계에서 오는 어려움들을 이야기했어. 고등학교 시절, 대학교 시절 뿐 아니라 가정에서도 자신을 이해해주는 사람이 없었던 상황들이 느껴졌어.

 

유별나다” “이상하다” “네가 참아야지” “네가 극복해야지

이런 말들을 많이 들어 왔다고 해.

눈에 보이지 않는 상처들이 쌓이고 쌓여 사람들은 병이 들겠지.

 

Photo by  Alec Douglas  on  Unsplash

처음 네트워크 파티에 갈 땐 실패는 무언가에 도전한 결과물이라고만 생각했었는데 아픔이라는 실패가 참 많더라. 몸이 아프거나 마음이 아프거나. 내가 원해서 무언가에 도전한 것도 아닌데 우리는 저절로 실패를 경험하게 되나 봐. 삶에서 계속해서 다가오는 여러 사건, 불행들은 내가 원치 않았던 도전의 상황들로 나를 끌어가는 듯해. 유별나지 않아야 하고, 평범하게 보여야 하고, 스스로 알아서 해야 하고, 책임지고 해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아. 그런 말들을 듣는 것이 필요할 때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만 가득하다면.. 글쎄. 존재를 부정당하는 기분을 느끼고, 소외되고, 고립될 것 같어.

 

공황장애가 있는 한 청년은 청중들에게 힘들면 도망가도 된다고 했어. 도망도 실패지만 그런 실패를 해도 된다고. 이들의 실패는 개인의 실패가 아닌 것 같아. 다양함을 인정하지 못하는 사회 속에서 우리들이 한동안 계속해서 겪게 될 실패지. 나는 그들이 우울증과 공황장애가 있음에도 이 무대에 나와 이야기를 하는 이유를 생각해야 했어. 자신을 이해해주지 못한 어떤 이들을 원망하고자 함이 아니었어. 자신에게 있으면 좋았을 관심의 부재를 탓하는 것도 아니구.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소중하다'

 

그런 말을 계속해서 하고 있는 듯했어. 사업에 실패를 하던, 태어날 때부터 아프던, 사람에게 상처 받아 마음의 병이 생기던, 유별나던, 연애에 실패를 하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소중하다. 실패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은 그 것을 알고 있는 거야.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함께 박수치는 나와 청중들도 알고 있는 것이고. 실패는 성공하기 위한 기본 과정들이라고 하지? 그 자리에 모인 많은 이들은 실패를 성공의 과정으로 인정해 나가고 있는 것 같아. 아픔이 실패라면 인정과 극복은 성공일까? 성공은 실패 뒤에 오는 것만도 아닌 것 같은데. 성공 안에 실패가 들어갈 뿐이지. 내가 본 그들은 이미 성공적인 삶을 살아내고 있었어. 자기가 삶의 주인공인 사람들.

 

Photo by  TK Hammonds  on  Unsplash

우리는 모두 삶의 주인이 되기 위해 준비하고 있는 사람들이야.

 

50년 뒤를 살고 있는 너에게 오늘의 이 희망을 전하고 싶었어.

그 때가 되면 지금 우리들이 어떤 고민을 했는지, 어떤 활동을 했는지, 이런 많은 것들이 잊혀져 갈테니까.

다음에 또 편지 할게.

 

서로 다른 두날,

두명의 할아버지를 만났어.

 

지하철 옆 칸에서 온 할아버지는 가방을 끌고 나와 칸의 중간에 섰지.

나는 음악을 듣고 있었는데,

할아버지 목소리가 워낙 우렁차서 자동으로 고개를 들게 됐지 뭐야.

그의 표정이 해맑아 난 갑자기 이어폰을 빼고 싶어 졌어.

백화점에서 파는 앞치마를 2천 원에 판다고,

이 기회를 놓치지 말라고 했지.

헤블랑했어.

헤블랑 하나는 말 알려나?

사전에 안나오는 나의 엄마 용어야. 

어설프다는 뜻으로 썼었는데 이 단어는 도대체 언제부터 내가 썼었는지 모르겠다.

어쨌든.

토끼 캐릭터가 그려진 그 앞치마는 절대로 물이 들어가지 않는데.

가끔,

차라리 아무 무늬가 없을 때가 가장 나은 때가 있잖아?

그 앞치마가 그랬어.

나는 그 헤블랑한 앞치마를 샀어.

필요한게 아니면 거의 사지 않는 나인데.

백화점에도 파는 좋은 거라고 해서 산 것도 당연 아니지.

 

할아버지의 표정에서..

그 표정에서 보이는 열정이랄까, 희망이랄까. 

그 무언가가 존경스러워서.

부러워서.

난 굉장히 역동적인 사람은 아니어서 말이지.

가끔 이런 사람들을 만나면 기분이 좋다.

 

할아버지가 백화점 물건을 떼와서 싸게 파는 것이 아닐 거라 생각해.

평소의 나라면 2천 원 주고도 사지 않을 물건이지.

하지만 나는 할아버지의 희망을 보았어.

할아버지는 스스로의 활동에 자긍심을 느끼는 표정이었어.

당당하고. 유쾌했어.

Photo by  Aaron Burden  on  Unsplash

비가오는 다른 날이야.

비가 온다는 기사를 봐서 우산을 챙겨 외출을 했지.

그 날은 누가 봐도 비가 오는구나 알 수 있는 그런 날이었어.

대구 시내에 내려 길을 걸어갔어.

빗방울이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고, 우산을 챙겨 온 보람이 있다며 스스로 만족하던 차였지.

거리 중간 벤치 쪽에 앉아 있는 할아버지를 봤어.

할아버지는 의자가 있는 그 곳에서,

의자 앞의 바닥에 앉아 있었어.

표정이 있어야 할 얼굴에 표정이 없는 느낌.

 

할아버지 앞엔 돈을 받는 바구니가 있었고,

할아버지는 그 바구니인지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하는 바닥인지를 하염없이 보고 있었어.

나는 그냥 지나갔어.

그렇게 무시하고 가려는데 빗줄기가 생각보다 너무 빨리 거세졌어.

젠장.

다시 할아버지가 있는 쪽으로 갔어.

할아버지는 여전히 누구도 쳐다보지 않고 있었어.

나는 할아버지에게 우산을 건네었어.

목적지 바로 근처라 우산 없이 갈수도 있었고,

집에 돌아갈 때는 그칠지도 모른다 싶었지.

그렇게 계속 앉아있을 것 같은 할아버지의 모습이 상상되는게 싫었던 것 같아.

 

할아버지는 나를 슬쩍 보고 다시 땅바닥인지를 보며 고개를 저었어.

“저 우산 하나 더 있어서요.”

할아버지는 계속 거절했어.

할아버지는 거기에 그 모습 그대로 있을 작정인 거지.

꽤나 냉정한 나는 어른에게도 아이에게도 세 번 이상 제안하지 않는단다.

결국 다시 우산을 쓰고 목적지로 향했어.

길을 가다 돌아본 할아버지는,

허공인지.

바닥인지.

돈 바구니인지 모를 곳을 바라보고 있었어.

 

Photo by  reza shayestehpour  on  Unsplash

길거리 노숙자나 돈을 구걸하는 사람들을 혐오에 가까운 감정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을 보곤해.

나의 지인도 있지.

나도 그 사람들을 보면 마음이 썩 유쾌하지 않아.

그렇지만 혐오할 권리는 나에게 없다 생각했어.

내가 그 삶을 살아본 것은 아니니까.

단정할 수는 없는 것이니까.

그런데 비오는 날의 나는 할아버지를 도우려 한걸까.

비판하고 싶었던 걸까.

비난하고 싶었던 걸까.

무기력을 파는 할아버지.

그날의 나는 그날의 할아버지를 '무기력을 파는 사람'으로 보았던거지.

 

지하철 할아버지는 자신의 희망을 보여주었고,

거리의 할아버지는 자신의 무기력을 보여주었어.

 

지하철의 할아버지는 자신의 희망을 눈치챘겠지.

거리의 할아버지는 자신의 무기력을 눈치챘겠지.

 

두 노인은 모두 자신이 무엇을 팔고 있는지 잘 알고 있었을 것 같아.

그들의 역사 속에서는 지금의 그 모습이 최선이었을 건데.

무기력을 파는 이의 모습이 눈에 걸리는 것은,

최선의 다른 방법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야.

거리의 할아버지가 비오는 날은 우산을 쓰고, 

의자가 있으면 의자에 앉고,

울 일에는 울고,

웃을 일에는 웃었으면 좋겠어.

희망을 팔수 있다는 걸 알았으면 좋겠어.

 

나는 무기력을 파는 할아버지와 희망을 파는 할아버지를 만났었어.

50년 뒤의 나는 어떤 최선을 택했을까?

궁금한 밤이야.

 

Photo by  diana spatariu  on  Unsplash

 

내 삶이 가치있다. 가치있었다 말할 수 있는 것은 나 뿐이라 생각해.

 

적어도 내 삶은 나에 의해 정의되어질꺼야.

 

내 삶 전체는 나에 의해 정의되어질꺼야. 

 

'나는 어떻게 살고 있나.'

 

'나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그런 이야기를 너에게 하기로 했어.

 

50년 뒤를 살고 있을 너에게.

 

Photo by  Kari Shea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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