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가 국민들을 주체가 아닌 도구로 치부할 때 국가 폭력은 정당화된다.

 

  50년도 훨씬 전에 대한민국의 많은 젊은이들은 우리나라도 아닌 남의 나라 전쟁에 투입된다. 그것도 덥기도 덥고, 낯선 베트남이라는 나라였다. 대리전에 투입된 용병에게 안전한 전쟁터는 없었다. 많은 대한민국의 젊은이들은 죽거나 돌이킬 수 없는 부상을 입는다. 이들은 개인의 자격으로 돈을 벌러 간 것도 아니고 여행을 간 것도 아니다. 정당한 국가 행위에 의한 파병이었고, 명령에 따라 군인의 직무를 성실히 수행하다 발생한 사안이다.

 

  그렇다면 이들에게는 국가가 법률에서 정한 정당한 보상금을 지급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그러기에는 가난했고, 시민 한 사람의 가치를 정당하게 매기지도 않았다. 군에서 죽으면 개보다 못한 죽음이라는 말이 그대로였다. 턱없이 적은 보상금으로 사람의 목숨 값이 매겨졌다. 부상은 더 적은 보상금과 그 뒤로 노동을 할 수 없는 환경까지 가혹하게 주어졌다.

 

  그런데 이 전쟁이나 국가에 의한 명령이 정당하지만은 않았던 시대였다. 당시 대한민국은 사형선고를 내리고 하루도 지나지 않아 사형을 집행하고(인혁당 사건) 실체도 없는 용공사건을 만들어 무고한 이를 간첩으로 몰아 가두고 죽이던 불법의 시대였다. 

 

제29조 ①공무원의 직무상 불법행위로 손해를 받은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가 또는 공공단체에 정당한 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이 경우 공무원 자신의 책임은 면제되지 아니한다.

  ②군인·군무원·경찰공무원 기타 법률이 정하는 자가 전투·훈련등 직무집행과 관련하여 받은 손해에 대하여는 법률이 정하는 보상 외에 국가 또는 공공단체에 공무원의 직무상 불법행위로 인한 배상은 청구할 수 없다.

 

  군이라고 해서 불법이 없지는 않았다. 한국전쟁은 소년들을 모아 국민방위군을 만들어 길에서 수도 없이 얼어 죽게 했다. (국민방위군 사건) 베트남 전쟁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국가와 상관의 부당한 명령과 불법이 행해졌다. 이들이 죽음에 대한 정당한 보상과 함께 불법행위로 인한 헌법 29조 1항의 배상을 요청하는 것이 박정희에게는 너무나 큰 부담이 되었다. 국고는 집권자들의 배는 불릴지라도 그들에게 배상해 줄 여지는 없었다. 국고 고갈 방지라는 목적으로 결국 유신헌법에서 헌법 29조 2항에 이중배상 금지 조항을 만들어서, 국가를 위해 희생한 사람들의 목숨 값을 그렇게 가볍게 여전히 다루고 있다.

 

  국민이라면 국가의 행위에 대해 보상과 배상을 받기 위해 정당한 청구권을 가진다. 이는 헌법 26조에 명시되어 있다. 하지만, 29조 2항은 국민이 국가로부터 기본적인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는 청구권을 또 다른 헌법의 이름으로 제한하고 있는 것이다. 선진국, 아니 우리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어느 국가에도 이러한 군인 등에 대한 이중배상 금지 규정은 존재하지 않는다.

 

  대한민국의 시민은 하나하나가 존엄해야 하는 인간이다. 국가 재정이라는 물질적 가치에 종속되어 재단될 수 없다. 아무리 들여다봐도 헌법 29조의 2항은 대한민국이 가장 아플 때 잔인하게 만들어진 슬픈 법이다.

 

작가_박민경

 

* 출처: 페이스북 페이지 '베이직 커뮤니티' @with.basic.commun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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