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가다 현수막 하나를 봤어.

실패 박람회라고 적혀 있었지.

대구에서 실패를 소재로 한 활동들이 진행되는 행사였는데, 시민들이 학업, 취업, 인간관계, 연애 등 분야를 선택하여 실패에 대해 이야기하는 숙의 토론이 있었어. 실패를 소재로 한 전시, 버스킹 공연이 있어 시내를 돌아다니며 내용들을 볼 수 있었지. 실패에 대해 이야기 할 수 있는 부스, 무대도 있었고, 실패의 경험을 나눌 수 있는 청년 네트워크 활동도 진행됐어. 여러모로 궁금할 수밖에 없었어. 대구에서 이런 걸 하는구나 감회가 새롭기도 했구.

 

나는 실패한 청년들의 네트워크 파티에 참석했어. 가는 길에 상상해봤지. 무슨 이야기가 나올까? 내가 가서 이야기 나눌 거리는 있을까? 나도 크고 작은 실패를 경험하고 있지만 훨씬 더 역동적인 도전을 해가는 사람들에 비하기엔 꽤나 주관적인 실패가 아닐까 싶었어. 하지만 이 네트워크의 취지 자체가 자신의 삶과 타인의 삶을 응원하기 위함일테니 실패의 경중을 따질 필요는 없겠다 싶었지.

 

미묘한 긴장감과 함께 들어간 행사장 왼편에는 발표자들이 있었어. 첫 발표자는 여러 사업을 도전하고 실패하기를 반복해왔고, 지금도 도전 중이었어. 주도적인 삶을 살아간다는 느낌? 그리고 두 번째 발표자가 무대 위에 올랐어. 그는 선천적인 병이 있는데 성장과정에서 여러 사고들을 겪어 더 아픈 곳이 많아졌데. 건강이 좋지 않은 그 청년은 그럼에도 좋아하는 일들을 하며 잘 살아가고 있다고 했어.

 

다음 발표자 둘은 공교롭게도 우울증을 앓고 공황장애 진단을 받은 상황이었어. 공황장애나 우울증을 앓는 청년들이 많다는 건 알고 있었어. 요즘 유행하는 책을 봐도 개인의 감정이나 마음 치유를 위한 것들이 굉장히 많거든. 그래도 이런 자리에서 실감하게 될 줄은 몰랐네. 두 청년은 관계에서 오는 어려움들을 이야기했어. 고등학교 시절, 대학교 시절 뿐 아니라 가정에서도 자신을 이해해주는 사람이 없었던 상황들이 느껴졌어.

 

유별나다” “이상하다” “네가 참아야지” “네가 극복해야지

이런 말들을 많이 들어 왔다고 해.

눈에 보이지 않는 상처들이 쌓이고 쌓여 사람들은 병이 들겠지.

 

Photo by  Alec Douglas  on  Unsplash

처음 네트워크 파티에 갈 땐 실패는 무언가에 도전한 결과물이라고만 생각했었는데 아픔이라는 실패가 참 많더라. 몸이 아프거나 마음이 아프거나. 내가 원해서 무언가에 도전한 것도 아닌데 우리는 저절로 실패를 경험하게 되나 봐. 삶에서 계속해서 다가오는 여러 사건, 불행들은 내가 원치 않았던 도전의 상황들로 나를 끌어가는 듯해. 유별나지 않아야 하고, 평범하게 보여야 하고, 스스로 알아서 해야 하고, 책임지고 해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아. 그런 말들을 듣는 것이 필요할 때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만 가득하다면.. 글쎄. 존재를 부정당하는 기분을 느끼고, 소외되고, 고립될 것 같어.

 

공황장애가 있는 한 청년은 청중들에게 힘들면 도망가도 된다고 했어. 도망도 실패지만 그런 실패를 해도 된다고. 이들의 실패는 개인의 실패가 아닌 것 같아. 다양함을 인정하지 못하는 사회 속에서 우리들이 한동안 계속해서 겪게 될 실패지. 나는 그들이 우울증과 공황장애가 있음에도 이 무대에 나와 이야기를 하는 이유를 생각해야 했어. 자신을 이해해주지 못한 어떤 이들을 원망하고자 함이 아니었어. 자신에게 있으면 좋았을 관심의 부재를 탓하는 것도 아니구.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소중하다'

 

그런 말을 계속해서 하고 있는 듯했어. 사업에 실패를 하던, 태어날 때부터 아프던, 사람에게 상처 받아 마음의 병이 생기던, 유별나던, 연애에 실패를 하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소중하다. 실패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은 그 것을 알고 있는 거야.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함께 박수치는 나와 청중들도 알고 있는 것이고. 실패는 성공하기 위한 기본 과정들이라고 하지? 그 자리에 모인 많은 이들은 실패를 성공의 과정으로 인정해 나가고 있는 것 같아. 아픔이 실패라면 인정과 극복은 성공일까? 성공은 실패 뒤에 오는 것만도 아닌 것 같은데. 성공 안에 실패가 들어갈 뿐이지. 내가 본 그들은 이미 성공적인 삶을 살아내고 있었어. 자기가 삶의 주인공인 사람들.

 

Photo by  TK Hammonds  on  Unsplash

우리는 모두 삶의 주인이 되기 위해 준비하고 있는 사람들이야.

 

50년 뒤를 살고 있는 너에게 오늘의 이 희망을 전하고 싶었어.

그 때가 되면 지금 우리들이 어떤 고민을 했는지, 어떤 활동을 했는지, 이런 많은 것들이 잊혀져 갈테니까.

다음에 또 편지 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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