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다른 두날,

두명의 할아버지를 만났어.

 

지하철 옆 칸에서 온 할아버지는 가방을 끌고 나와 칸의 중간에 섰지.

나는 음악을 듣고 있었는데,

할아버지 목소리가 워낙 우렁차서 자동으로 고개를 들게 됐지 뭐야.

그의 표정이 해맑아 난 갑자기 이어폰을 빼고 싶어 졌어.

백화점에서 파는 앞치마를 2천 원에 판다고,

이 기회를 놓치지 말라고 했지.

헤블랑했어.

헤블랑 하나는 말 알려나?

사전에 안나오는 나의 엄마 용어야. 

어설프다는 뜻으로 썼었는데 이 단어는 도대체 언제부터 내가 썼었는지 모르겠다.

어쨌든.

토끼 캐릭터가 그려진 그 앞치마는 절대로 물이 들어가지 않는데.

가끔,

차라리 아무 무늬가 없을 때가 가장 나은 때가 있잖아?

그 앞치마가 그랬어.

나는 그 헤블랑한 앞치마를 샀어.

필요한게 아니면 거의 사지 않는 나인데.

백화점에도 파는 좋은 거라고 해서 산 것도 당연 아니지.

 

할아버지의 표정에서..

그 표정에서 보이는 열정이랄까, 희망이랄까. 

그 무언가가 존경스러워서.

부러워서.

난 굉장히 역동적인 사람은 아니어서 말이지.

가끔 이런 사람들을 만나면 기분이 좋다.

 

할아버지가 백화점 물건을 떼와서 싸게 파는 것이 아닐 거라 생각해.

평소의 나라면 2천 원 주고도 사지 않을 물건이지.

하지만 나는 할아버지의 희망을 보았어.

할아버지는 스스로의 활동에 자긍심을 느끼는 표정이었어.

당당하고. 유쾌했어.

Photo by  Aaron Burden  on  Unsplash

비가오는 다른 날이야.

비가 온다는 기사를 봐서 우산을 챙겨 외출을 했지.

그 날은 누가 봐도 비가 오는구나 알 수 있는 그런 날이었어.

대구 시내에 내려 길을 걸어갔어.

빗방울이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고, 우산을 챙겨 온 보람이 있다며 스스로 만족하던 차였지.

거리 중간 벤치 쪽에 앉아 있는 할아버지를 봤어.

할아버지는 의자가 있는 그 곳에서,

의자 앞의 바닥에 앉아 있었어.

표정이 있어야 할 얼굴에 표정이 없는 느낌.

 

할아버지 앞엔 돈을 받는 바구니가 있었고,

할아버지는 그 바구니인지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하는 바닥인지를 하염없이 보고 있었어.

나는 그냥 지나갔어.

그렇게 무시하고 가려는데 빗줄기가 생각보다 너무 빨리 거세졌어.

젠장.

다시 할아버지가 있는 쪽으로 갔어.

할아버지는 여전히 누구도 쳐다보지 않고 있었어.

나는 할아버지에게 우산을 건네었어.

목적지 바로 근처라 우산 없이 갈수도 있었고,

집에 돌아갈 때는 그칠지도 모른다 싶었지.

그렇게 계속 앉아있을 것 같은 할아버지의 모습이 상상되는게 싫었던 것 같아.

 

할아버지는 나를 슬쩍 보고 다시 땅바닥인지를 보며 고개를 저었어.

“저 우산 하나 더 있어서요.”

할아버지는 계속 거절했어.

할아버지는 거기에 그 모습 그대로 있을 작정인 거지.

꽤나 냉정한 나는 어른에게도 아이에게도 세 번 이상 제안하지 않는단다.

결국 다시 우산을 쓰고 목적지로 향했어.

길을 가다 돌아본 할아버지는,

허공인지.

바닥인지.

돈 바구니인지 모를 곳을 바라보고 있었어.

 

Photo by  reza shayestehpour  on  Unsplash

길거리 노숙자나 돈을 구걸하는 사람들을 혐오에 가까운 감정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을 보곤해.

나의 지인도 있지.

나도 그 사람들을 보면 마음이 썩 유쾌하지 않아.

그렇지만 혐오할 권리는 나에게 없다 생각했어.

내가 그 삶을 살아본 것은 아니니까.

단정할 수는 없는 것이니까.

그런데 비오는 날의 나는 할아버지를 도우려 한걸까.

비판하고 싶었던 걸까.

비난하고 싶었던 걸까.

무기력을 파는 할아버지.

그날의 나는 그날의 할아버지를 '무기력을 파는 사람'으로 보았던거지.

 

지하철 할아버지는 자신의 희망을 보여주었고,

거리의 할아버지는 자신의 무기력을 보여주었어.

 

지하철의 할아버지는 자신의 희망을 눈치챘겠지.

거리의 할아버지는 자신의 무기력을 눈치챘겠지.

 

두 노인은 모두 자신이 무엇을 팔고 있는지 잘 알고 있었을 것 같아.

그들의 역사 속에서는 지금의 그 모습이 최선이었을 건데.

무기력을 파는 이의 모습이 눈에 걸리는 것은,

최선의 다른 방법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야.

거리의 할아버지가 비오는 날은 우산을 쓰고, 

의자가 있으면 의자에 앉고,

울 일에는 울고,

웃을 일에는 웃었으면 좋겠어.

희망을 팔수 있다는 걸 알았으면 좋겠어.

 

나는 무기력을 파는 할아버지와 희망을 파는 할아버지를 만났었어.

50년 뒤의 나는 어떤 최선을 택했을까?

궁금한 밤이야.

 

Photo by  diana spatariu  on  Unsplash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