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스포주의)

 

영화 '국가부도의날' 포스터

 

영화 국가부도의 날을 봤어. IMF 구제금융 요청이 있었던 1997년의 상황을 영화로 만들어 본 거야. 허구지만 IMF 국제금융구제신청(1997123) 직전의 우리나라 상황과 여러 사람들의 선택을 짐작해보게 되었지. 너에게 꼭 소개하고 싶어 이렇게 몇 자 적어봐. 여러 인물이 나오기 때문에 인물을 중심으로 이야기 해볼게.

 

 

첫 번째 인물은 IMF를 적극 추진하는 정치인이야. IMF 구제신청이 국가부도를 막는 빠르고 쉬운 방법이라면서 국가부도의 위기를 국민들에게 알리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해. 그리고는 대기업에 몰래 찾아가 미리 대비 해두라 일러두는 장면이 나와. 우리나라에 불리한 조건을 들이미는 IMF의 요구에 대항하지 않고 수긍해버리지.

 

실제 당시에 정부의 외환보유고를 유지, 관리하는 행정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고들 보지. 영화에서도 얼핏 나오지만 당시 김영삼 정부가 한보, 기아자동차와 같은 기업에 불법 은행대출을 용인해주고 김영삼 대통령 아들 김현철이 막대한 뇌물을 받았데. 시대마다 경제 문제에 있어서 국가가 해주어야 할 역할들이 있는데 이때는 오히려 대통령이 자신의 이익을 챙겨 문제를 일으키는 상황이었지. 불법으로, 권력을 이용해서 말이야. 김영삼 대통령은 19971110일 강경식 경제부총리와 통화하기 전에는 외환위기 심각성을 모르고 있었다고 위키백과에 기재되어 있어. IMF 구제 신청 이후 바로 다음 대통령 선거가 진행되고 김대중 대통령으로 정권이 바뀌면서 뒤처리를 넘기고 자신은 책임에서 벗어나 버렸지.

 

영화의 마지막 즈음에는 지금 현재의 인물들이 드러나. 여전히 대기업들에게 정보를 건네주는 정치인들이 묘사되는데, 허구지만 나는 언젠가부터 당연히 이런 일들이 있을 것이라 짐작하는 것 같아. 확신에 가까운 짐작 말이야. 나는 이런 불신이 스스로 굉장히 지치게 한다고 느껴. 그래서 오히려 관심을 두고 싶지 않고. 이런 무관심과 회의가 계속된다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겠지. 더 나아가 (실제 그랬던 것처럼) 우리 상황은 더 심각해져 버릴지 몰라. 내가 아무 잘못을 하지 않고 산다고 생각하지만 무관심은 누군가들의 행동을 용인하게 되니까.

 

정부, 정치인들이 끝까지 국민들에게 나라의 상황을 알리지 않은 이유가 뭘까? 영화에서는 정치인들이 미리 알려 줘봐야 혼란만 가중될 것이라고 말하고, 반대측(주인공)은 알려서 대책을 마련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해. 내 추측은 시민, 시민단체 등의 반대를 회피하기 위해 IMF 협상을 비공개로 해버리고, IMF 신청을 하고 나서야 비로소 공개 하는 거야. 자기들이 알아서 결정하고 처리하겠다는 권위의식이지. 시민들과 소통하지 않고 결정해 버리는 정치인은 시민을 아무 생각 없는 사람, 통제되어야 하는 사람, 자기 뜻대로 따라오기만 하면 되는 존재로 생각한다고 봐. 시민들이 자신보다 아래에 있다는 것을 전제하는 느낌이랄까. 이론상으로는 오히려 반대가 되어야 하는데 말이야.

 

두 번째 인물은 한국은행 직원들이야. 영화에서는 유일하게 국가부도를 확신하고 IMF 구제금융요청 체결을 반대하는 사람들이지. 국가부도 사태를 국민들에게 알려야 한다고 주장하고, IMF 구제금융요청 외에 다른 방안(모라토리엄 선언: 채무지급유예)이 있다고 주장하지만 결국 미국 등에 유리한 IMF 관리체제가 시작돼. 영화에서 이들은 IMF 구제금융요청은 최악의 선택지라고 보고 다른 대안 책들을 제안하지만 다수의 정치인들은 동의하지 않아. 언론인들도 관심 가지지 않지.

 

실제로는 1997년 한국은행에서 여러 차례 정부에 IMF 구제금융 요청을 촉구했어. 일부 학계에서 다른 대안 책을 제시했지만 진지하게 논의해보지 않았어. 영화에서의 주인공과 같은 인물은 없었던 거지. 있었다 하더라도 한국은행의 주된 의사가 아니었고. 비슷한 시기, 우리나라와 비슷한 상황이었던 말레이시아는 외환위기가 해외 투기 자본의 조작이라 판단하고 IMF에 구제 금융을 신청하기 보다는 내부 시장 보호에 주력했다고 해. 정부 지출을 늘려서 자기 나라의 기업, 시장을 살리려 한거지. 우리나라와 비슷하게 가장 빨리 외환 위기에서 벗어난 국가 중 하나라고 하더라. 시기는 비슷하지만 말레이시아는 부동산 가격이 오르지 않고 물가가 크게 바뀌지 않았데. 결과의 형태가 많이 다른 거지. 국가가 어떤 결정을 하느냐가 얼마나 큰 변화를 가져오는가 볼 수 있는 것 같아.

 

우리나라에서도 의견이 나왔던 모라토리엄 선언은 러시아가 했었데. 외채상환을 일방적으로 3개월 동안 중단한 거지. 그래도 국제사회는 러시아에 어떤 재재도 가하지 않았고, 서서히 극복해 나갔지. 오히려 이자를 낮춰 이득을 보기도 했데. 러시아도 말레이시아와 마찬가지로 외환위기 상황이 국제 투기 자본 때문이라고 본거야. 우리나라에서 모라토리엄 선언이나 다른 대책이 제대로 논의되지 않은 것에 대해 미국을 중심으로 한 지식인들, 정치인들이 많았다는 추측도 있어. 우리 정부는 외환위기의 이유를 국내의 문제로만 보았던 이유도 있지. IMF 내에서 미국의 영향력이 컸고 미국이 자신의 시장을 넓히기 위해 IMF를 이용한다는 추측들도 많았어. 영화에서도 미국 정치인이 IMF 팀과 몰래 만나는 장면들이 나와. IMF 관리체제를 통해 자본시장의 대폭 개방으로 미국을 포함하여 여러 국가들이 결국 경제적 이익을 취할 수 있었기 때문에 그런 측면이 분명 있었을 것 같아. 우리나라 정치인, 지식인들이 왜 굳이 미국의 이익을 대변할까에 대해서는 답답하기만 하지만.

 

우리나라에 다른 대안책을 제시하는 이들이 있었고, 이들의 의견에 정치인들이 주목하지 않았다면. 정치인이 아닌 시민들은 왜 주목하지 않았을까? 그 당시 우리들은 정부에 대해, 지식인들에 대해 어떤 인식을 가지고 있었을까? 우리들이 아는 바가 제한되어 있다면 정부가 계속해서 국가위기가 아니라고 발표할 때 그 말을 믿지 않을까. 또 여러 기업들이 연달아 부도가 나고 환율이 떨어지는 상황에서 IMF 구제금융신청을 했다고 발표된다면 우리나라가 이제 큰일 났구나.’라는 생각을 하지 그 것이 최선의 대안일까 의심하지 않겠지. 누군지 잘 모르는 몇몇 사람(예를 들어, 모라토리움 선언이 대안이라 말하는)의 말을 들어도 그게 뭔지 잘 모르겠고, 더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보기도 어렵고 말이야. 무엇보다 그게 더 나은 대안이라는 판단이 든다고 해도 내 의사를 어디에 표현해서 제시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을지 몰라. 가능하다고도 생각지 않고.

 

사회를 바라본다는 것은 뭘까. 문제가 발생하면 그렇구나’, 대안을 제시하면 그렇구나’, 비리를 저질렀다 하면 나쁜 놈’, 사람이 죽었다하면 대책도 마련하지 않는다탓하고. 그건 뭔가 그 사실을 알리는 사람들, 그 일을 저지른 사람들의 의도대로만 되는 느낌이야. 우리가 먼저 문제를 예측하고, 대안을 제시할 수 있고, 더 나은 대안을 알아볼 수 있고, 비리를 들춰내어 뿌리를 뽑을 수 있고, 누군가 다치거나 죽기 전에 뭔가 할 수 있다면. 그렇게 되기 위해 뭔가를 살펴보고 의심하고 공부해나가는 것이 사회를 진짜 바라보는 것이 아닐까.

 

세 번째 시민은 이런 기회를 틈타 돈을 벌려는 인물이야. 자산관리자였던 한 인물이 투자자들을 설득해 외환위기 시 헐값으로 떨어진 집을 사들여 돈을 벌게 되는 거지. 그 인물은 이런 말을 해. 국가, 정치인의 무지, 무능에 투자하려 한다.’ 나라의 위기상황을 알아챘지만 국가를 신뢰하지 않는 시민의 모습이지. 그는 국가의 위기를 이용해 자신의 이익을 취하려는 인물이야. 사회 현상을 파악한 사람이 자신의 이익만을 챙길 때 사회에는 또 하나의 희망이 사라지는 것이겠지. 또 하나의 불행이 생겨나는 것이고. 현재도 미국이 투자하는 기업들을 위주로 투자하며 계속해서 부를 쌓는 것으로 묘사돼.

 

사회의 움직임을 정확히 파악했다 하더라도 파악한 사람이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느냐에 따라 미래의 사회는 좀 더 긍정적으로 바뀌기도 하지만 좀 더 부정적으로 바뀌기도 해. IMF 구제신청 전후를 볼 때 자신의 이익만을 우선으로 선택한 사람들은 대통령, 정치인, 굼융업계 종사자, 투자자, 대기업 운영진 등에서 존재했던 거지. 사회 전체로 보면 자신의 선택이 나라를 망하게 하고, 다른 시민들의 삶을 피폐하게 한다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모르겠지만. 그 것을 자신들의 책임에 두지 않기 때문에 이기적인 선택들을 해나가는 것이라 봐.

 

시민성에는 사회에 대한 책임의식이 포함되어 있어.

우리에게는 그런 것에 대해 생각해볼 시간이 필요해.

 

마지막 네 번째 인물은 중소기업 사장이야. IMF 구제금융신청으로 가장 큰 타격을 받았던 곳 중 하나가 중소기업들이지. 물론 대기업들도 여럿 부도가 났어. 이때의 자살률은 어마 무시하다고 해. 산업화 시대 이후로 계속해서 사업을 해나가던 시민들이 1997년 당시 어떤 상황에 처해졌는지, 왜 그들이 자살을 생각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해 짐작해볼 수 있었어. 상처를 받은 서민의 대표 캐릭터였어.

 

먼저 중소기업의 거래처들이 하나둘씩 부도를 겪게 돼. 자신이 가지고 있던 어음이 아무 소용이 없어지지. 현금으로 돌려받을 수 있는 곳이 없는 거야. 물건을 팔아야 할 곳들도 망하고, 직원들 월급 줄 돈도 없는 상황인데 금융권도 망하니까 대출도 안 되는 거야. 가족에게 보증을 서 달라 하고 제2금융권인 사채 대출을 받기도 하지만 그것으로도 부족할 정도로 속수무책이지. 영화에서는 대기업과 중소기업들이 줄줄이 부도가 나는 것을 체크해나가는 장면이 보여. 그때의 나는 11살이었는데 내가 모르는 이름의 대기업들도 엄청 많더라구. 자살을 시도하려다 참고 마지막에 동생(한국은행직원)을 찾아가 교도소에 가도 되니 돈을 대출할 수 있게 도와 달라고 말하는 장면은 너무 쓸쓸하고 답답해.

 

돈이 없다는 것이 죽음을 선택할 정도의 문제인가 생각했던 적이 있어. 나와 가족이 사업을 해본 적이 없었고 주변에도 없어서 체감하기가 어려웠지. 영화에서의 인물을 보고 내가 돈이 없고, 빚이 많다는 사실이 어떻게 다가올지 생각해보게 됐어. 많은 직원들에게 줄 월급은 없고, 집이나 공장을 팔아도 가격이 너무 내려 푼돈이고, 거래처들도 부도가 났으니 사업은 진행이 되지 않고, 가족들은 나만 바라보고 있고. 이런 상황이 갑작스레 예고도 없이 불어 닥치면. 글쎄 막막함을 넘어 공포가 아닐까 싶어. 여러 위치에서의 책임감이 오히려 사람을 죽음으로 몰고 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런 일이 또 일어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어 씁쓸해.

 

그럼 IMF 구제금융 신청 후에는 좀 나아졌을까? 나아진 것도 있겠지만 삶이 많이 힘들어진 시민들이 많았을 거야. IMF가 한국에 요구한 내용은 이런 거야. 우리나라에서 활동하고 있던 기업이나 증권사 등의 금융기관에 대안을 마련할 기회를 주기 않고 부도처리를 하거나, 대기업의 구조조정을 통해 대량 해고를 진행하거나, 정규직들을 비정규직화한다거나, 외국 기업이 한국기업을 운영할 수 있도록 하는(외국인 주식투자 한도 확대(26%50%55%)) 의 것이지. 구제금융신청 바로 뒤에 있을 대선 후보들에게 각서를 받았었다 하니 수치스럽더라. 이때부터 늘어난 비정규직은 2008년 과반수를 넘겼다고 하니 2019년에 비정규직 이야기가 왜 나오고, 공무원 붐이 왜 일어났는지 이해가 되네.

 

영화에서는 금융업계 종사자들, 대기업 운영진 등도 나오는데 외환위기의 원인으로 지급준비제도 역할 축소, 국가의 외환 보유고 관리 실패, 정경유착으로 대기업의 부정대출 용인, 원화가치를 지키기 위한 인위적인 환율 방어(비용 들여서), 외채를 끌어온 금융기관들, 규모가 큰 국제금융세력들이 투자금을 회수해 가며 외환보유량을 고갈시키는 등이 알려져 있어. 내가 설명하기엔 아직 너무 어려워서 너도 한 번 즈음 자료를 찾아보라는 제안을 하고 싶어. 1997년에 시작된 IMF 관리체제가 2001년 끝났지만 우리나라는 또 다른 문제로 언제든 선택의 기로에 놓일 수 있으니까. 그때가 오기 전에 뭔가를 해볼 수 있는 것도 우리들이지 않을까? 정부에게만 의존하지도 지식인들에게만 의존하지도 말고, 올바른 정치인, 현명한 지식인들을 알아보고 뽑거나 지지할 수 있는 것도 우리들 시민이고, 경제 문제에 대책을 세우고 해결해 나갈 수 있는 것도 결국 우리들이니까.

 

1997년 외환위기 39억 달러에서 IMF로부터 195억 달러를 받고, 1998520억 달러, 20011028억 달러를 보유하게 되면서 2001823일에 195억 달러를 갚게 된 우리나라의 끈질김에 대해 상상해봐. 해외 빚을 갚는데 쓰이긴 했지만 금모으기 운동으로 세계적 이슈를 이끌어 냈던 시민성을 상상해봐. 우리들이 사회에 더욱 관심을 가지고 미리 움직인다면 우리나라 시민들의 저력은 더 효과적으로 발휘될 거라 믿어. 그 믿음만큼 바뀌는 것이고.

 

오늘도 희망이 만들어지고 있기를 바라며 그말 줄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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