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재확산이 시작됐다. 전 세계 어느 곳이든 모르지 않을 병. 대한민국은 타국에 비해 초기 제압을 잘하는 편이라 이슈가 되고 있었다. 초기 확산 시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신천지’에 대해 재조명(혹은 새롭게 알게 된)하게 되었다. ‘대구’, ‘신천지’, ‘대구 코로나’, ‘대구 신천지’ 등의 키워드가 난무하며 대구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어느새 신천지 교인, 코로나 확진자를 대표하는 이미지를 얻게 되었다. 대구에 살고 있는 일인으로서 나름 최선의 방역을 해왔다고 생각했다. 이동하지 않고, 필히 손 소독, 마스크를 썼으며 모임을 중단하고 화상채팅으로 일하는 것을 돌리는 등. 사실 거의 생계 벌이를 못한 채로 올해 상반기를 지냈다. 모아둔 돈을 매일 소진하며 생활하는 마음은 불안을 키워냈고, 잠을 못 자게 했다. 대구 확진자가 한 달 이상 없던 상황이 지속되고, 확진되어 치료 중인 사람이 30명 이하로 떨어진 것을 보고, 아 그래도 이렇게 다 같이 노력하니 이제 다 정리가 되어 가는구나 생각했다. 그러다 8월 15일 전국에서 모인 기독교 단체 등의 집회를 시작으로 다시 전국에 확진이 시작됐다. 처음의 공포보다는 덜했지만 그 빈자리를 분노와 체념, 혐오가 채웠다.     

 

왜. 왜 또 종교인가? 

종교인들의 존재가 사회악이 되어야 할 상황까지 몰고 가는 그들의 심리는 도대체 무엇인가?      

 

  나는 종교가 없다. 굳이 다른 종교에 관심 쏟고 싶지 않고, 내가 타 종교를 이해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나의 양심의 자유이기 때문에. (제19조 모든 국민은 양심의 자유를 가진다) 물론 나를 포함 사람들이 특정 종교를 박해하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 어떤 종교를 믿고 싶어 하는 사람에게 그 종교를 믿지 말아라. 믿으면 불이익을 주겠다는 식의 강요를 하게 될 수도 있다. 이런 사태는 개인의 양심의 자유가 타인의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게 된다. 이를 막기 위해 헌법에서는 종교의 자유를 명시했다. (헌법 제20조 1항 모든 국민은 종교의 자유를 가진다.) 종교의 자유는 특정 종교를 믿을 자유와 특정 종교를 믿지 않을 자유까지 포함한다. 특정 종교에게 불이익을 주지 않는다는 것을 포함한다고 보인다.

 

  한국교회연합(한교연)은 20일 ‘긴급 공지 사항’ 문자메시지에서 “우리는 생명과 같은 예배를 멈추어서는 안 된다. 이에 따른 모든 책임은 한교연이 함께 지겠다.”라고 했다. 반동성애기독시민연대·한국교회수호결사대 등도 “대면 예배까지 중지한 건 예배를 생명처럼 여기는 한국 교회를 적으로 돌려놓겠다는 위험한 정책”이라고 항의했다. (출처1) 이들이 지속적인 예배를 주장하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이 종교의 자유이다. 헌법에서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는데 왜 이를 위반하려 하느냐는 것이다. 

 

  2020년 8월 15일. 서울시에서 집회를 하지 못하도록 집회 금지 행정명령을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26개 단체에서 22만 명 규모의 집회를 강행했다. 모든 국민이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지기 때문이다. (헌법 제21조 1항 모든 국민은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진다.) 1980년대에는 민주화를 위해 불합리한 독재를 막고자 집회하던 시민들을 잡아가고, 고문하였던 일들이 있었다. 그 시대에도 지금 현재에도 이 조항은 없으면 안 되는, 필히 존재해야 할 내용이다. 종교가 있다는 이유로 집회를 못해서는 안될 것이다. 

 

  그러나 그 집회를 통해 2020년 8월 30일 기준으로 1천35명의 코로나 확진자가 생겼다. 수도권 965명, 비수도권 70명이고 아직 확진 추세가 줄지 않고 있다. (출처2)전광훈 목사 처벌뿐 아니라 광복절 집회의 일부를 허용했던 판사를 해임해야 한다는 국민청원까지 올라왔고, 19만 9,000여 명의 동의를 받았다. (출처3)

 

  8월 27일, 문재인 대통령과 기독교 지도자들 16명이 간담회를 했고, 문재인 대통령은 집회 참여자들이 확진에 대한 사과도 없고, 참가 사실이나 동선을 계속 숨겨 피해가 계속 늘어나는 상황을 지적했다. 한교종 회장 김태영 목사는 교회가 정부 방침에 반발하는 것은 민망한 일이지만 종교의 자유를 너무 쉽게 공권력으로 제한할 수 있다는 식의 문 대통령 발언은 놀랍다고 했다. 방역을 잘하는 교회는 방역 인증마크를 주고 “인증받은 교회는 방역 수치에 따라 현장 예배를 드리고, 수치를 어겨 확산이 되면 분명한 책임을 묻고, 몇몇 교회에서 확산되면 지자체장이 엄격한 원칙을 가지고 제지하면 좋겠다. 혹은 마스크를 착용하고 거리두기를 한 채 대면 예배를 진행하는 방안도 있다.”라고 했다. 이번 간담회에서 기독교 계 대표들의 입장은 예배는 그대로 진행할 수밖에 없으며 확진이 일어나지 않도록 방역을 철저히 하고, 잘하는 교회는 인증마크를 다는 식으로 하자는 것. 

 

  그럼 대한민국 시민이자 대구 주민, 올해 모임을 통해 하는 일을 시작한 자영업자이자 무교인 나는 어떤 말을 할 수 있는 것일까? 헌법에서 지켜져야 한다고 적혀 있으니 이 권리를 지켜줘야 한다는 논리는 어찌 보면 당연해 보인다. 그러나 나의 권리를 헌법에 따라 보장받는 것은 충분히 당연한 일이고, 그 권리를 보장받는 과정에서 타인의 권리가 배척당하는 것은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는 일인가? 배척당하는 타인의 권리가 나의 보장되어야 할 권리만큼 중요하지는 않다고 확신할 수 있는가? 나에게 생명보다 소중한 것(종교)일지라도 다른 이의 생명을 앗아가는 행동이라면?(헌법 제34조 1항 모든 국민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가진다.) 내 권리 주장을 계속하겠는가?

 

  이 주 전 산책을 하다 위성인지 별똥별 일지 모르겠는 빛줄기 하나가 떨어지는 걸 보았다. 별똥별일지도 모르니 소원 빌어야지 싶어 평소에 기도라는 것이 없는 나는 속으로 말했다. 다른 건 후순위로 두겠으니 제발 코로나 종식 좀 되게 해 달라고. 첫째는 내 꿈을 펼쳐나갈 기회가 계속해서 차단되기 때문이었고(헌법 제15조 모든 국민은 직업선택의 자유를 가진다), 둘째는 경제적으로 힘든 시기가 길어지면서 생계에 위협을 느끼기 때문이었고(헌법 제32조 1항 모든 국민은 근로의 권리를 가진다.), 셋째는 나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내가 모르지만 같이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아프거나 죽기 때문(헌법 제35조 1항 모든 국민은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를 가지며,)이었고, 넷째는 마음껏 사람들을 만나고 돌아다니고 싶었기 때문(헌법 제14조 모든 국민은 거주 이전의 자유를 가진다.)이다. 

 

  대면 예배를 해야 한다는 기독교인들에게 나는 진심으로 꼭 생각해주길 바라는 질문이 있다. 종교를 믿는다는 것은 나와 우리들을 위한 것이 아닌지, 믿는다는 것은 꼭 예배라는 상황을 통해서만 가능한 것인지, 그 상황으로 타인의 목숨에 영향을 준다면, 타인의 생계에 영향을 준다면, 타인의 공포와 불안에 영향을 준다면, 어떻게 책임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종교의 자유만큼이나 중요한 많은 것들을 포기하거나 제한받고 있는 수많은 시민들까지 사랑할 수는 없는 것인지?(헌법 제37조 1항 국민의 자유와 권리는 헌법에 열거되지 아니한 이유로 경시되지 아니한다. 2항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국가안전보장, 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으며, 제한하는 경우에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

 

  헌법 37조에서 말하는 ‘국가안전보장’은 ‘국민안전보장’과 같다. 국민들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제한할 수 있다고 되어 있다. 그리고 뒤 문장을 보자. 제한하는 것은 본질적인 내용이 아니다. 신천지 교인들이 대구와 전국에 큰 피해를 주었다고 해서 신천지라는 종교를 없앨 수 있는가? 신천지 교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처벌을 하고, 믿지 않도록 강요할 수 있는가? 그렇지 않다. (정말 소름 끼치게도 그렇지 않다.) 코로나 종식까지. 특정 기간 동안 행위를 제한하는 것이다. 그 제한은 종교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수많은 권리와 자유가 제한받고 있다. 

 

  나에게는 신천지나 광복절 집회 참여자들이나 별반 다르지 않다. 책임질 수 없는 일을 저지르고, 사태가 발생하면 모른 척, 자신의 잘못은 없는 척 살아갈 수 있는가? 코로나 종식을 위해 얼마나 많은 시민들이 희생하고, 피해보고 있을지는 어느 누구도 감히 가늠할 수 없을 것이다. 그 아픔과 힘듦을 스스로 책임질 수 있는 방법은 생명 다음으로 중요한 권리들을 잠시 내려놓는 것뿐이다. 설사 그 잠시가 꽤 긴 기간일지라도 생명에 위협이 되는 상황을 만들면서까지 지킬 수 있는 근거는 없다. 헌법에서는 종교와 정치가 분리된다고 한다. (제20조 2항 국교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종교와 정치는 분리된다.) 정부는 기독교여서가 아니라, 국민들의 안전을 위해 마스크를 벗고 접촉하는 행위에 해당하는 것, 다수의 국민들이 모이는 상황에 해당하는 것을 막으려 하는 것이다. 혹여 그렇지 않다, 다른 곳은 제한하지 않는다고 느낀다면 다른 이들의 권리도 동일하게 제한해달라 요청하는 것이 더 합리적인 행위가 아닐까? 

 

  코로나 확산을 두 번째로 겪으면서 나는 악마를 보았다. (무교인 내가 천사, 악마의 존재를 거론하는 것이 우습지만 우선은 그렇게 표현해 본다.) 수많은 사람들의 공포 어린 비난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가치를 지키는 것만이, 이익을 지키는 것만이 중요한 기독교인들은 이미 충분히 악마의 모습을 대변한다고 본다. 자신이 믿는 종교를 지지하는 사람들의 말은 무조건적으로 믿고 따르면서 그 종교를 믿지 않는 이들을 배척하는 것. 스스로 배제되기를 선택해오며, 함께 뭉친다고 생각해왔던 종교 활동이 실제로는 혐오를 쌓아 올리는 행위임을 느낀다. 그리고 그 혐오를 통해 새롭게 자란 악마는 코로나가 키우는 혐오. 나에게서 피어오르는 혐오다. 이 혐오의 끝을 알 수 없어 공포감을 느낀다. 방역을 잘 지키고 있을 기독교인들에게조차 확인할 수 없는 이기적인 행동일 뿐이라는 혐오가 나에게 존재하고 더욱 커지고 있음을 인정한다.

 

  혐오를 기반으로 한 논쟁과 갈등을 겪을 때 우리는 헌법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헌법은 단순히 한 개 조항을 가져와서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느꼈다. 살면서 내 권리가 침해당했다고 느낄 때 헌법을 알아두면 도움이 되겠지. 그것이 일차적인 목표인 것은 지금도 동일하다. 그러나 내 권리를 주장할 때 타인의 권리를 침해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는 것은 필수 조건이다. 극단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는 문제에 맞닥 뜨렸을 때 알 수 있는 객관적인 기준표 중 하나로 헌법을 읽어보자. 각측을 대표하는 이들이 이야기하는 근거가 되는 헌법 내용 외에 다른 내용들은 어떠한 것이 있는지, 그 상황에서 절대 놓치지 않아야 할 근본적인 것이 무엇인지를 뚫어 보는 힘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 헌법을 읽어야 하고, 전문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헌법이 삶의 무기가 될 수 있는가? 자신만을 보호하기 위해 헌법이 존재하는 것이 아님을 확실히 알고 바라본다면 우리 삶에 헌법은 무기가 될 수 있다. 타인을 해치는 정당성을 확보하는 무기가 아니라, 소통하고 조율해나갈 수 있는 가능성의 무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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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1: 기사출처: 비대면예배가 “사탄의 간계”라고? 한겨레21 2020.08.28.

http://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49144.html

출처2: 기사출처: 사랑제일교회·광복절 집회 관련 확진자 1,400명 넘어, 한국경제, 2020.08.30. 

http://www.wowtv.co.kr/NewsCenter/News/Read?articleId=A202008300074&t=KO

출처3: 기사출처: '광복절 집회 허용한 판사 해임' 청와대 청원 20만명 육박...비난 고조, 서울경제, 2020.08.21. 

https://www.sedaily.com/NewsView/1Z6O0D5GQ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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