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2071년)
2050년 5월 13일 65세 I 이야기
I가 잡채 요리를 하고 있다. 벨이 울리고 I의 자녀들이 자신들의 자녀를 데리고 들어온다. I는 요리를 하다 말고 달려가 손주들을 안고 볼을 비빈다.
I “왔어 에구 우리 새끼들~”
손으로 잡채 면을 집어 입에 넣는 막내 손주와 그 옆에서 좀 더 컸다고 포크로 면을 돌려 먹는 손주. 그 옆에서 울컥하며 수저를 꽉 잡고 있는 I의 딸. 안쓰럽게 보고 아내 표정을 살피는 I의 사위. 옆에서 묵묵히 국을 먹고 물을 마시는 I의 남편 S가 있다.
I의 딸 “언제 진단 받은거야? 같이 병원에 가지..”
I “너희 아빠가 같이 가줬는데 뭘. 엄마는 괜찮아.”
I의 딸은 주르륵 흐르는 눈물을 아이들에게 안보이려 무의식중으로 고개를 돌리는데 큰 손주가 의아하게 쳐다본다.
I의 사위 “그럼 치료를 어떻게 해야..”
I “힐링마을에 가서 살 예정이야.”
I의 딸 “힐링마을? 거기로 간다고?”
I가 고개를 끄덕이며 딸을 물끄러미 본다.
I의 딸 “거리가 좀 멀 것 같은데...그냥 우리랑 같이..”
I “너희 아빠도 같이 갈거야. 예전부터 우리는 누가 아프면 거기가자고 했었어.”
I의 남편 “아빠가 엄마랑 같이 갈거야.”
I “거기 가면 친구들도 많고, 놀거리도 많고. 또 안전하니까 아빠도 너희도 덜힘들고..많이 안 멀어. 시마다 있는데?”
I의 사위가 폰으로 우리도시 힐링마을을 검색한다.
I의 사위 “저희 집에서 30분 정도 걸리네요..”
I의 딸 “돈 때문에 그런거면 내가 좀 더 벌면..”
I “네가 몰라서 그런데 거기가 국가 지원이라 돈도 안들지만, 시설도, 생활방식도 굉장히 좋데. 엄마 의견 존중해줘.”
I의 손주 “엄마 나 아이스크림~”
손주에게 아이스크림을 꺼내 주는 I는 방긋 웃어 보인다.
한 달 뒤 힐링마을로 간 I와 I의 남편.
힐링마을은 각 도시마다 조성된 3-4개 동을 합친 크기의 마을로, 치매 환자와 그들의 가족이 함께 생활할 수 있도록 생활, 의료, 문화활동 등을 두루 지원해주는 곳이다. 의료와 주거, 식사에 있어서는 직계가족 1인까지 무료로 제공되어 치매환자와 가족이 생계벌이를 하지 못하는 어려움을 해소하고자 하였다. 처음에는 의료서비스와 주거를 중심으로 지원을 해주었지만 지금은 다양한 문화활동, 커뮤니티 활동, 더 나아가 종교활동, 돈벌이 활동 등을 할 수 있도록 마을 곳곳에서 사회복지사 등이 지원하고 있다.
I와 I남편도 기존에 살던 집을 정리하고, 힐링마을 내 주택 한 곳에 정착하게 된다. 예전의 요양병원처럼 칸칸이 병실처럼 집이 있고 다 함께 집단 주거하는 형태가 아니라, 개별 주거공간을 제공한다. 가스 등 안전장치가 설치된 I네 주택에는 I의 딸이 어릴 때부터 자라온 과정이 고스란히 담긴 액자들이 가득하다. 물론 손주들 사진까지 다 있다.
아침이 되고, 일찍 눈을 뜬 I의 남편은 커피를 내려 마시며 I와 자신의 젊은 시절 앨범을 보고 있다. I가 일어나 방문을 열고 나오고, 남편 S는 냉장고에서 과일쥬스를 꺼내 아내에게 건넨다. 그때 벨이 울리고, S가 문을 열자 방문의사가 방긋 웃는다.
의사 “안녕하세요 아버님! 진료 나왔습니다. 어머니 일어나셨나요?”
의사가 I와 이야기를 나누며 그날의 컨디션을 체크하고, 오늘 어떻게 보낼 것인지 이야기 나누며 유의사항을 안내하고 나간다. S도 안내받은 내용에 따라 아내의 약을 챙겨주고, 옷을 갈아입고 함께 외출한다. 집에서 2분 거리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린다. 정류장 이름은 “힐링마을 45정류소”이다. 힐링마을 내 버스는 종점에서 마을 밖으로 나가는 버스를 탈 수 있고, 다 힐링마을 내에서 달린다. 힐링마을 밖의 대중교통보다 속력이 훨씬 느리고 마을 밖으로 나갈 때는 동반자 확인을 해주는 직원이 따로 있다. 그때 버스가 도착하고 누군가 소리친다.
사회복지사 “I님, S님! 여기에요! 타세요!”
이날은 힐링마을 6070 피크닉이 있는 날이다. 힐링마을 사회복지사들의 지원으로 사람들은 동년배 친구들과 함께 댄스파티를 가지기도 하고, 동산을 걷고 하루종일 카드게임, 화투를 하기도 하며, 요리 만들기를 하기도 한다.
I와 S는 이제 온지 한 달 밖에 안되어 어색하긴 했지만, 또래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안면을 트면서 조금씩 편안해지고 있다. 오늘은 댄스를 배우는 날이라 서로 댄스를 배우며 춤을 추고, 웃고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I는 너무 웃겨서 눈물을 흘리는 남편 S를 보며 우울하기만 할 것 같았던 우리의 노후가 자신의 착각일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다함께 버스를 타고, 집집마다 내리는 버스. 예전이면 느리다고 속이 터졌을 건데 지금은 이렇게 가면서 여러 사람들과 자식이야기, 살아온 이야기 나누는 게 재미있어서 좀 더 천천히 갔으면 하는 마음에 버스기사를 보고 야속해 하기도 했다. 아쉬운 마음으로 인사하고 내린 I와 S가 집에 들어가자 I의 딸과 그 가족들이 달려왔다. 손주들의 깜짝 방문에 놀랐다가 반가워하는 I, S. 딸과 사위가 준비한 어설픈 음식을 함께 먹으면서 S가 그날 있었던 댄스파티 이야기를 하느라 정신 없는 모습을 보면서 I는 자꾸 웃음이 났다.
I의 딸 “엄마, 여기 한달되었는데 어떤 것 같아? 별로면 이야기해도 돼.”
I “진짜로 솔직히 말하면.”
I의 딸과 사위 “..?”
I “좋아. 편안하고. 좀 더 안전해진 것 같아.”
안도의 웃음을 짓는 가족들. 해가 지고, 마을 곳곳에 가로등이 켜지고, 혹시 밤에 길을 잃고 밖을 돌아다니는 사람은 없는지 살펴보는 공무원들이 야간 순찰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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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마성의기쁨]을 보았다. 주인공은 사고로 신데렐라증후군. 자고 일어나면 기억을 잃는 병을 앓으면서 치매환자들의 생활을 위한 공간 [힐링마을]을 만들려고 애쓴다. 그 내용을 바탕으로 상상해본 에피소드이다. 2021년 치매환자들의 삶에 대해서 정부에서 관심을 가진지는 꽤 되어 보이고, 치매안심마을 등의 호칭을 붙이며 여러 정책을 펼치기 시작하고 있다.
(정책 내용 추가예정)
치매의 상황은 아니지만 일본 베델의 집은 정신의 병이 있는 사람들이 자립적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들어간 작은 마을이다. 이들은 같은 마을에서 함께 주거하고, 스스로 돈을 벌며, 식사를 하고 여가를 즐기며 스스로가 만족하는 생활을 함께 만들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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