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2060.

 

-생활자립

 

2040, 의무교육이라는 개념을 해체시키기로 한 정부는 단계적으로 의무교육 과정을 줄여왔다. 남아있는 학교 교실에서는 의무교육 과목이었던 국어, 수학, 사회, 과학, 영어 등의 내용들이 단계적으로 선택과목으로 바뀌어 갔다. 과목별로 의무로 학습해야 하는 내용이 점차 줄어갔다. 그렇다고 의무교육과정이 줄어들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새로운 측면에서 필요하다고 판단된 의무교육과정이 추가되기도 했는데 생활자립과 권리에 대한 학습이 대표적이다.

 

생활자립 과목에서는 요리, 세탁, 주택수리 및 관리, 돈 관리, 세금 등을 배웠다. 요리는 초등학교 1학년부터 시작한다. 1학년은 불요리가 없는 채소무침, 샐러드 등을 요리하고, 학년이 올라가면서 칼과 불을 많이 쓰는 국요리, 볶음요리 등을 배운다. 이는 경제적 능력을 갖추어도 배달음식이나 밖에서 사서 먹는 것에만 익숙해진 독거인들이 늘어나면서 건강상 문제가 제기되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경제적 격차에 따른 음십섭취 간극, 남녀 간의 차이 없는 가사노동 참여 등을 위해서이기도 했다.

 

삶을 살아간다면 누군가는 꼭 해야 하는 설거지, 세탁, 전등 갈기, 간단한 전기기구 다루기, 세금 내기, 돈 관리 등에 대해 모르는 사람들을 일명 생활바보라 부르기 시작했고. 대인기피증이 심한 사람이 전등을 갈거나 갈아달라고 맡기지 못해 1년 넘게 어두운 집에서 생활한 일이 이슈가 되면서 이 개념이 생겨났다. 한편 모든 것을 물건과 서비스를 사고 배달시키는 것으로 해결하려는 현상과 환경파괴, 경제성장 저하 등이 맞물리면서 생활자립의 필요성이 확대되었다. 아이들뿐 아니라 성인들을 위한 생활자립교육도 진행되고 있다. 학교 대신 마을학습공동체나 홈스쿨링을 진행하는 아이들도 어느 곳에서든 이 과정을 이수해야 한다. 8-13살 사이에 말이다. 1학년의 한 수업시간을 살펴보자.

 

1학년 설거지 시간

 

교사 안녕하세요 여러분! 오늘은 설거지하는 방법을 배울 거에요. ‘나 설거지가 뭔지 안다하는 친구들 손들어볼까요?

 

아이들 15명 중 11명이 손을 든다. 아이들은 서로 누가 손을 들었는지, 안 들었는지 서로 쳐다보기 바쁘다.

 

교사 오 그렇군요~! 그럼 나 설거지 할 줄안다. 해봤다 하는 친구들 다시 손 들어볼까요?

 

아이들 11명 중 6명이 손을 든다.

 

교사 6명의 친구들이 설거지를 할 줄 아는군요~그럼 아직 잘 모르는 친구들과 서로 짝을 지어볼게요. 서로 도와서 해봅시다. 2학년부터는 매일 급식 먹은 그릇과 수저를 설거지 하는 거 알고 있나요?

 

아이들 ~!!

 

교사 우리도 해볼까요?

 

아이들 아니요!!

아이들 !!(동시에)

 

교사 오 의견이 다양하네요~그런데 설거지를 안하면 그릇을 씻어줄 사람이 없어서 다음날부터 밥을 못 먹게 되는데 괜찮아요?

 

아이들 웅성웅성 거리거나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교사를 쳐다본다.

 

교사 우리는 자기가 먹은 건 자기가 치우고 자기가 필요한 건 자기가 해나가는 것을 배우려고 해요~자 그럼 짝궁과 같이 여기로 모여볼까요?

 

잠시 후 아이들은 설거지 하는 교사의 모습을 보고, 각자 계단을 타고 올라가서 그릇 한 개와 수저한 쌍을 설거지하려고 고무장갑을 낀다. 싱크대는 성인 키높이보다는 낮으나 최고학년의 평균키 정도로 맞추고 그보다 작은 아이들이 좀 더 올라가 하는 형태로 하고 있다. 어떤 아이들은 고무장갑의 짝을 거꾸로 해서 팔에 끼우고는 손가락이 안 굽혀진다고 불편해하고, 어떤 아이는 그릇을 계속 떨어트렸다. 이런 경우를 대비해 그릇은 깨지지 않는 플라스틱류를 사용한다. 그릇을 떨어트린 아이의 짝이 계단을 내려가 주워오기를 반복하였고, 세 번째가 되자 싸웠다. 어떤 팀은 물을 틀어놓고 그릇에 물튀기기 놀이를 하다 눈에 물이 튀어 움찔한다. 교사는 이리저리 다니며 아이들이 끝까지 해볼 수있도록 반복해서 알려준다. 이미 가정에서 설거지를 해본 아이들은 다 쓴 고무장갑을 털고, 걸어두거나 헹주를 빨아 고사리 손으로 짝과 함께 비틀어 짜거나, 옆친구에게 훈수를 두면서 놀았다. 이런 수업은 한 번의 체험으로 끝나지 않고,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해나갈 수 있도록 반복한다. 그래서 설거지와 요리는 실제 학생들의 식사시간에도 적용되어 아이들에게 여러 역할이 주어진다.

 

초등학교 6학년 정도가 되면 대부분 집에서 형광등 갈기, 못을 박거나 빼기, 간단한 가구 조립, 컴퓨터 바이러스 방지 시스템 점검 등을 할 수 있고, 적어도 30가지의 요리는 할 수 있다. 처음에는 생활자립 교육과정에 반감을 가진 부모들도 많았으나 이 과정이 정착되고 10년이 지나면서 가정에서, 사회에서 큰 변화를 절감하게 되면서 성인교육까지 확대되었다. 미처 학교에서 배우지 못한 어른들의 생활자립 문제가 반복해서 대두되었기 때문이다.

 

-권리교육

 

앞서 여러 가지 의무교육 과목들이 줄어들고, 선택제로 바뀌었다는 설명을 했다. 또한 새롭게 생겨난 의무교육이 있다고 했다. 모든 사람들에게 공통적으로 살아가는데 있어서 필수가 된다고 선택받은, 그것은 권리교육이다. 인권이라 말할 수 있고, 주권이라 말할 수도 있겠으나, 사람, 대한민국 국민에게만 한정 짓지 않고 타국 사람, 동물, 환경, 세계평화 등 넓게 다루고 있기 때문에 이를 통틀어 권리라고 칭했다. 초등학교 5학년 수업을 살펴보자. 이 날의 주제는 세계인권선언이다.

 

교사 어제했던 활동 이어서 모둠별 진행을 해주면 되요. 오늘 진행자가 누구누구지요?

 

아이들이 4-6명씩 모둠으로 모여 앉아 있고, 그 중 한명씩이 손을 들었다. 팀별로 진행자가 있는지 확인한 교사는 세계인권선언 이해하기를 시작하라고 하고, 모둠을 돌아다닌다.

 

이세상팀은 1948년 세계인권선언을 살펴보고 있었다. 이 선언문은 1948년 유엔총회에서 채택되어 2037년까지 기준으로 삼던 내용이다. 2037년 세계 흐름의 변화를 반영한 세계인권선언문이 새롭게 재탄생하면서 지금까지(2060) 각국가에서 주요 기준으로 보고 있다. 이세상팀은 과거 선언문과 지금의 선언문을 비교해서 읽기를 하고 있었다.

 

U 예전에는 30조의 내용으로 되어 있어. 지금은 60개 조항이고.

I(진행) 내용이 달라진거 찾아서 이야기하기 해보자. 어제 옛날 거 15조까지 했어. P부터.

P 16조 읽어볼게.

 

16

1. 성인 남녀는 인종, 국적 또는 종교에 따른 어떠한 제한도 없이 혼인하고 가정을 이룰 권리를 가진다. 그들은 혼인에 대하여, 혼인기간 중 그리고 혼인 해소시에 동등한 권리를 향유할 자격이 있다.

2. 혼인은 장래 배우자들의 자유롭고 완전한 동의하에서만 성립된다.

3. 가정은 사회의 자연적이고 기초적인 단위이며, 사회와 국가의 보호를 받을 권리가 있다.

 

여기서 지금은 몇 개 바뀌었어. .. ‘성인 남녀는지워지고, ‘사람은 누구나로 바뀌었어. ‘가정은 사회의 자연적이고 기초적인 단위이며지워지고...‘모든 종류의 가정은으로 바뀌었어.

 

T 성인이 뭐야?

P ..그거는 모르는데. 들어본 것 같은데.

교사 검색해볼까?

 

U가 탭을 눌러 검색을 한다.

 

U 자라서 어른이 된 사람이래.

T 어른이라는 말이야?

P 그런 것 같애.

교사 남녀는 왜 지워졌지? 남녀도 사람인데.

A ..남자랑 여자만 결혼하는게 아니라서요?

교사 그런 것 같지?

P 진짜 옛날 이야기이네요!

U 우리 옆집 아저씨들도 부부야. 둘다 몸은 남자로 태어났는데 마음은 서로 좋아하는 마음이래.

I 그럼 이렇게 바뀐건 이런 아저씨들도 포함하려고 그런거겠네?

P 그런 듯.

I 선생님이 주신 공통 질문 던질게. ‘이 조항에 대해 만족하나요?

 

T, P, U는 손을 들었고, A, I는 손을 들지 않았다.

I A 너는 왜 만족 못해? 나는 사람말고 성인사람이라고 해야할 것 같아서야. 우리는 아직 결혼 못하잖아.

A , 나는.. ‘모든 종류의 가정은 사회와 국가의 보호를 받을 권리가 있다.’가 마음에 안들어. 가정이 아니라도 사람이면 다 사회와 국가의 보호를 받는다고 앞에 나와있잖아. 그런데 왜 두 번쓰는지 모르겠어.

교사 모든 사람에 가정이 포함되지. 맞아. 그럼 A 의견과 비슷하게 보면 5조 내용도 3조 내용 안에 포함되는 것 같은데 왜 따로 한번 더 적었을까?

 

3조 모든 사람은 생명과 신체의 자유와 안전에 대한 권리를 가진다 .

5조 어느 누구도 고문, 또는 잔혹하거나 비인도적이거나 굴욕적인 처우 또는 형벌을 받지 아니한다.

 

P 고문하는 일이 많았어서 그런 것 같아요. 예전에는 잘못이 있어도 없어도 고문하는 일이 많았다고 했어요.

I 잘못을 저지르면 안된다.’고 말하지만, 우리가 거짓말을 너무 많이 하면 거짓말을 하면 안된다고 한번 더 말해주는 것처럼.

 

P, A, 교사 ~~

 

이세상팀을 살펴보던 교사는 다른 팀으로 간다. 그렇게 세계인권선언을 2-3개씩 읽으며 학습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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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인터넷을 하다가 '21세기 대한민국 6대 거짓말'이라는 유머 짤을 보게 되었다.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목사부터 팩트체크를 하는 기자까지... 피식하고 웃음이 나왔다. 한편으로는 우리나라의 최고 엘리트 집단인 의사, 법관, 검사가 어느새 사기꾼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조롱의 대상이 되었다는 것이 씁쓸하였지만 유머는 유머일 뿐. 심각하게 받아들일 필요는 없었다. 올라가 있던 내 입꼬리를 내릴 수 있었던 것은 무죄추정의 원칙으로 조사하고 있다는 검사의 말이었다. 2016년 나는 형사고소를 당한 적이 있다. 남한테 피해만 안 끼치고 평범하게 살면 평생 죄지을 일이 없다는 것이 초등학교 시절부터 나의 확고한 신념이었는데, 역시 인생은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는다고 전과자들을 이해 못 하던 내가 전과자가 되게 생긴 것이다.       

 

  벌써 4년이나 지난 일이지만 사건의 경위는 이러하다. 나는 룸식 호프집에서 저녁 11시부터 새벽 5시까지 마감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그날은 손님이 별로 없었는데 해야 할 일을 다 끝내고 주방 쪽에서 좀 쉬고 있었다. 그때 어떤 술 취한 여자 손님이 나에게로 와서 애교를 부렸다. 아무래도 술집이다 보니 별별 손님들이 다 있다. 이 정도는 귀여운 축에 속해서 적당히 호응도 해줬다. 마감시간에 가까워지니 손님들이 차례대로 빠져나갔고 나는 혼자 아르바이트 중이었기 때문에 나간 순서대로 방마다 정리를 한다고 분주하게 움직였다. 방을 다 치우고 마감 알바가 해야 할 매장 전체 마감 정리를 한 뒤 새벽 5시가 되어 화장실에서 옷을 갈아입고 퇴근을 하였다. 화장실에서 옷을 갈아입을 때 무엇인가 불길한 기분을 잠깐 느끼긴 했지만 그때 당시 이상한 점은 없었다. 찜찜한 기분은 그때 잠깐이었고 퇴근 후 피곤에 뻗어 집에 가자마자 바로 잠을 청했다.      

 

 늦은 오후가 되어 일어났고 내 휴대폰에는 점장님으로부터 검은색 지갑을 화장실에서 본 적이 있냐는 문자가 와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였고 있었던 사실 그대로 본 적이 없다고 하였다. 그 후, 2시간 뒤 모르는 번호로 문자가 왔다. 어제 나에게 말을 걸었던 바로 그 손님이었다. 내 개인 정보는 어떻게 알아낸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자신의 지갑을 본 적 있냐는 연락을 나에게 직접 해왔다. 나는 지갑을 본 적 없다고 하였고 지갑을 꼭 찾았으면 좋겠다는 말까지 전해줬다. 그리고 한 시간 뒤 이번에는 경찰서에서 전화가 왔다. 담당 형사는 고소인도 별다른 처벌을 원하지 않으니 지금이라도 지갑을 돌려주면 괜찮다는 식의 말을 내게 하였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할 수 있다고 내게 말하였다. 마치 범죄자인 나를 회유하는 듯 말하였다. 나는 매우 어이가 없어 왜 사람을 범죄자 취급하냐고 따져 물었다. 그런데 그 형사는 본인도 역정을 내면서 '그럼 수사를 할 때 모든 사람을 다 범죄자라고 생각하고 수사를 하지 그게 아니면 어떻게 수사를 하냐며' 나에게 따져 물었다.      

 

 대한민국 헌법 제27조 4항 형사 피고인은 유죄의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는 무죄로 추정한다고 규정되어 있다. 범죄 영화에서도 흔히 나오는 용어로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본 적 있는 '무죄추정의 원칙'이다. 헌법에서 기술하고 있는 형사 피고인이란 범죄의 혐의가 있어 검사에게 기소되어 법원의 심리를 받고 있는 피의자를 뜻한다. 여기서 유죄 판결이란 실형 선고 판결을 말한다. 내 앞에 있는 수사관은 검사가 아닌 형사라서 그런 것일까? 하물며 살인혐의를 받고 있는 잔혹한 살인범이라도 할지라도 법원의 판결이 나오기 전까지는 무죄로 추정되는데 나는 왜 죄를 저지르지도 않았는데 범죄자 취급을 받고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무죄추정의 원칙은 근현대 법치국가에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형사법의 그간을 이루는 대원칙이자 헌법에도 명시된 국민의 기본 권리인데 이러한 원칙이 상황에 따라 선택적으로 사용될 수 있는 것이란 말인가? 실제로 무죄추정의 원칙은 재판 당사자인 피고인뿐만 아니라 경찰이나 검사 등의 수사기관으로부터 범죄의 의심을 받게 되어 수사를 받고 있는 피의자를 모두 포함하고 있는 개념이다. 무죄추정의 원칙은 피의자 또는 피고인을 죄 없는 자에 준하여 취급함으로써 법률적 또는 사실적 측면에서 유형이나 무형의 불이익을 주지 않아야 된다는 원칙이다. 여기서 말하는 불이익이란 유죄를 근거로 한 사회적 비난 또는 기타 응보적 의미의 차별 취급을 가하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무죄추정의 원칙에 따라 수사관은 고문이나 모욕적 언행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 통화 말미에 내가 조사에 응하지 않겠다고 하니 직접 차를 끌고 우리 집에 와서 데려가겠다고 했다. 부모님과 동네 사람들 앞에서 끌려가는 꼴을 보였으면 좋겠냐고 협박 아닌 협박까지 했다. 나는 더 이상 대꾸를 할 가치를 못 느끼고 '그냥 알아서 하세요.'라고 말하며 통화를 끝냈다. 그때 당시에도 무죄추정의 원칙을 알고는 있었지만 제대로 알지는 못 했고 형사의 확고한 언행에 잠시 나의 판단력까지 흐려져 결국 이에 대해서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했다.      

 더욱이 억울했던 점은 심지어 당시 형사는 명확한 증거도 없었다는 점이다. 당일 통화를 끝내고 출근을 해서 점장님께 이야기를 들어보니 형사들은 매장 내 CCTV를 녹화하는 방법조차 몰라 증거 확보도 제대로 하지 않고 그 자리에서 띄엄띄엄 영상을 본 뒤 화장실에 맨 마지막으로 들어간 사람이 나라는 것만 확인하고 돌아갔다고 한다. 그러고는 화장실에서 나온 나의 모습을 보고 걸음걸이가 영 범죄자 걸음걸이 같다며 나를 지갑 도둑 취급한 것이다. 결국 직접 매장 CCTV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 돌려보고 내 휴대폰으로 재녹화를 하였다. 법적으로 그래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나를 보호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확인 결과 나 말고도 화장실에 들어간 사람이 한 명 더 있었다. 심지어 그 사람은 고소인이랑 같은 시간대에 화장실에 함께 있었다. 확실한 증거를 들고 그다음 날 경찰서에 스스로 조사를 받으러 갔다. 해당 영상을 보여주며 이와 같은 사실을 이야기해 주니 오히려 형사 쪽에서 나에게 증거 제공을 해 달라고 요청했다. 언제는 나를 범죄자 취급하더니 그 이후로 자신의 본적과 나의 본적이 같다며 요즘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지연까지 운운하며 친근한 척했다.      

 

 그 뒤로 경찰서로부터 아무런 연락도 오지 않았다. 유력한 용의자였던 나는 그래서 그 일이 어떻게 종료되었는지 결과조차 알지 못 한다. 만약 이 당시에 내가 법에 대해서 많이 알고 있었다면, 나를 지켜주는 법이 존재한다는 것을 명확히 알았더라면 형사의 부적절한 언행에 더 잘 대처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고 늘 후회를 한다. 그때 당시의 나나 지금의 내가 덜 억울하지 않았을까? 하고 말이다. 하지만 그때 당시에 나는 나를 보호할 수 있는 어떠한 방법도 몰랐기 때문에 그저 혼자 억울함을 삭일 수밖에 없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나에게 한 가지 변화가 생겼다면 명확한 범죄 행위가 밝혀지기 전까지는 타인의 범죄 혐의에 대해 내 의견을 굳이 달지 않는다는 점이다. 지난날을 돌이켜 보면 나 역시도 그저 혐의만 있으면 이미 범죄를 저지른 것 마냥 TV 속 용의자들을 욕하고 범죄자 취급을 했던 적이 있다. 이것이 언론의 문제인지는 알 수 없지만 수사 기관을 포함하여 어쩌면 인간의 몸속 DNA에는 무죄추정의 원칙이 아닌 유죄추정의 원칙이 들어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의미에서 헌법 상 명시하고 있는 무죄추정의 원칙이 얼마나 중요한 가치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몇 년이 지난 일이지만 형사의 마지막 말이 선명하게 기억난다.      

 

"만약 내가 진짜 범인이 아니면 어떻게 책임 지실 거예요?"       

 

"범인이 아니면 좋은 거 아닙니까?"

 

헌법읽는청년 1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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